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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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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선주 작성일18-02-05 18:05 조회2,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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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봉헌축일을 전후로 하여 수도원에서는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이 전례로 표현됩니다. 새로운 수련단계로 가는 청원식, 수련식, 첫서원식, 그리고 종신서원식...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동적인 순서가 아니라 불러주신 분에게 새롭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끌리며 나아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자 동시에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죠.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운명은 나를 위해 색다르고 놀라운 선물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젊고 생기 넘치는 여인을 만나게 해준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나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힘이 넘쳐나고 길고 긴 악몽에서 벗어나 깨끗이 상처가 치유된 것 같았다. 마침내 기쁨과 활력을 안고 삶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갑자기 내 주위의 세상도 상처에서 회복되었고, 나는 나와 함께 지옥에 떨어졌으나 거기서 살아나오지 못한 한 여인의 이름과 얼굴을 떨칠 수 있었다. 내 글쓰기는 얼마 전과 똑같았으나 전혀 다른 모험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이제 회복기 환자의 고통스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정을 구걸하고 다정한 얼굴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건축의 과정이 되었으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글을 쓰면서 살아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귀환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역설적이게도 가혹했던 기억의 짐은 재산이 되었고 씨앗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것이 식물처럼 자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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