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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단 에쎄이》, 방민호 엮음, 책읽는 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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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정현 작성일18-09-30 15:02 조회2,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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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단 에쎄이는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해 놓았다. 무엇보다도 소설이 아니라 수필인 점이 좋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그들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나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 우스운 장면을 묘사한 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며, 슬픈 장면에서는 가슴이 아프고,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그리움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볼 줄 아는 작가들의 보통 아닌 시선 덕분에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나 보다.

 

무엇보다도 모단 에쎄이를 읽는 맛은, 시대의 아픔이든 개인적인 소회이든 시공간을 뛰어넘어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에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대사가 왜 그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순간을 온몸으로 글로 살다간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보고 싶다.

 

강경애, 계용묵, 길진섭, 김기림, 김남천, 김동석, 김동인, 김사량, 김석송, 김억, 김용준, 김유정, 김일엽, 김진섭, 나도향, 나혜석, 노자영, 노천명, 박계주, 박영희, 박태원, 박팔양, 백신애, 안석영, 안회남, 엄흥섭, 오장환, 이광수, 이상, 이석훈, 이선희, 이원조, 이육사, 이태준, 이효석, 임화, 정인택, 정지용, 지하련, 채만식, 최독견, 최서해, 한용운, 현덕, 현진건

 

폭양이 내리쪼이는 어떤 날 오후였다. 나는 서대문 밖으로 가다가 서대문 정류장을 못 미쳐서 바른편 쪽에 있는 조그마한 일인日人 과자점 앞을 지나려니까 사람들이 죽 모여 서서 무엇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부터 거기 쓰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반신은 먼지가 나도록 마른 도랑 속에 떨어지고 상반신은 도랑 턱에 놓여서 벽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는 어찌하여 여기 이렇게 쓰러져서 최후의 길을 밟게 되었는가? 굶었는가 병들었는가? 굶고 병든 몸이언만 그것을 누일 곳은 이 뜨거운 볕 아래 타 들어가는 길가밖에 없던가? 그의 머리맡에 던져진 빈 지게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나는 이렇게 나와 같이 생을 받아 이 세상에 나왔던 한 명의 인간이 나왔던 자취도 없이 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 최서해, 값없는 생명(<조선일보>, 192892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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