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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읽는 법》, 베티나 슈탕네트,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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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독자 작성일19-07-01 17:32 조회1,6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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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읽는 법》, 베티나 슈탕네트,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9.

 

'거짓말' 하면 피노키오가 떠오른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졌던 피노키오. 이 동화의 교훈은 단순히 '그러니까 거짓말은 나빠. 하면 안돼'일까. 좀 더 들여다보면, 거짓말로 길어진 코의 길이만큼 우리는 상대방과 멀어진다는 게 아닐까. 사람은 관계니까, 그러니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려면 진실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와 같은 피노키오의 교훈에 익숙하다.


거짓말 읽는 법. 베티나 슈탕네트는 다소 도전적인 단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유일하게 진실을 묻는 존재인 우리 인간은 기껏해야 진실의 일부를 말하고 듣기 바랄 뿐, 결코 진실의 전모를 원하지 않는다. … 인간은 의사 표시를 위해 그림이나 기호를 쓰기 시작한 이래 거짓말을 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려 묘사하거나, 심지어 침묵할 때조차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사소한 몸짓이나 눈길 또는 주의를 흐리는 장광설 혹은 아예 인물 됨됨이 전체로 우리는 왜곡하고 속이는 그런 거짓말의 대가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속이는데 그 어떤 구체적인 의도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꺼이 보고 싶어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대에게까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짓말이라면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프롤로그에서).

 
한편 우리는 거짓말을 하다가 발각되었을 때 시치미를 뚝 떼는 놀라운 정도의 숙련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거짓말에는 의도가 있다.

   -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어!

거짓말은 일종의 전달이다.

   - 아냐, 나는 그저 혼잣말한 것일 뿐이야!

거짓말은 일종의 진술이다.

   -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 눈길, 내 몸짓, 모두 네가 오해한 거야.

거짓말은 엉뚱한 방향을 유도하는 유인 전략이다.

   - 뭐가 그리 심각해, 그런 거 아냐!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쁜 줄 알면서도 거짓말한다.

   - 하지만 나는 정말 몰랐어!

거짓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 나는 그게 진실인 줄 알았어, 그런데 진실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해?

거짓말은 속이려는 의도를 지닌다.

   - 나는 그저 좋은 뜻으로 한 말이야!

거짓말은 가짜 정보다.

   - 아이고 오해야, 오해. 그건 내 의견이었을 뿐이야!

거짓말한 사람이 범인이다.

   - 무슨 소리야, 나는 희생자야, 악의적인 모략에 당했을 뿐이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

   - 그렇지만 거짓말은 누구나 하잖아?"(프롤로그에서)

 

이와 같은 거짓말을 둘러썬 진실게임에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한번이라도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가 거짓말을 믿기 전에 거짓말쟁이를 알아볼 법을 가르쳐주는, 혹은 본색이 거짓말쟁이인 우리 자신 역시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날 위험을 막기 위한 핸드북은 아니다. 슈탕네트는 '거짓말을 하면 된다 혹은 안 된다'는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 거짓말이라는 주제에 접근한다. "거짓말하기와 거짓말하는 사람과 거짓말 자체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오로지 분명한 개념을 가질 때에만,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론에 참여하고 의원을 선출하며 이로써 정부에 참여하는 세상에서 방향을 올바로 잡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거짓이 횡행하는 시대, 진실 이후의 시대, '페이크 뉴스' '평행적 진실' '가상의 진실' '대안적 진실' '전략적으로 부정확한 묘사' 따위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거짓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솔직한 대화에 이를 수 있을까. 결국은 나에서 시작한다. 내가 먼저 솔직해지는 것. 그로 인해 손해볼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무릅쓰는 것. 이는 자기의 경계를 넘어 '나'를 열고 '너'를 부르는 것이다. '너' 역시 '나'에게 솔직함으로 화답할 때, 즉 우리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열린 자세로 서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거짓말의 심연을 재보려는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지은이 베티나 슈탕네트는 1966년생의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다. 함부르크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마투엘 칸트와 근본적 사악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솔직함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 반유대주의를 다룬 글을 쓰고, 계속 '거짓말'에 대하여 연구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히히만』(2011)으로 독일 NDR 도서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2015년 컨딜 역사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2011년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최근 『사악한 생각』(2016), 『추악한 안목』(2018)을 펴냈다. 2007년에 출간된 소설 『데카르트의 딸』(메에스터 형제 집필)에서는 칸트 책을 편집해 장미기사단의 비밀을 폭로하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책 속에서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가 변형시키는 것은 진실이 결코 아니며, 언제나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자신과 맞지 않아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여기는지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거짓말을 한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세계의 정보를 숨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속내를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떤 것을 가졌다고 확신하고, 이것을 지금 자신이 가진 그대로 지키며 남과 나누고 싶지 않아,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것으로 꾸미려 한다."


"자전거에 열쇠를 채워두었느냐는 물음에 '아니, 안 했어'라고 대답하는 대신 유치하게 '응' 하는 거짓말은 우리가 자기의 앎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예에서 보듯, 이런 다른 세계는 열쇠로 채워진 자전거다. 우리는 앎과 행동을 서로 묶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거짓말은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다.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가 세계와 관련해 하는 생각을 훔치고, 나의 생각을 전달하여 그 자리에 가져다놓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우리는 최종 결과가 어떤 것일지에 비추어 생각하는 경향 탓에, 모든 기억을 이 예상 결과에 맞추어 정리하곤 한다. 이런 목적론적 사고방식은 오류에 빠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의미를 찾는 것에 과도한 비중을 두어 결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해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실을 무시하는 탓에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거짓말의 작용 원인은 거짓말쟁이, 곧 인간이며, 거짓말을 이루는 재료는 오로지 소통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상호관계에 의존한다."


"권력은 개인이 가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권력은 집단을 형성할 때, 그리고 이 집단이 결속하는 한에서만 실재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권력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그가 특정한 수의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이름으로 행동할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뜻한다. … 권력은 행동하는, 또는 어떤 것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결속해 이들의 동의를 얻어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이다."(한나 아렌트, 재인용)


"폭력은 독백인 반면, 권력은 대화다. 바로 그래서 폭력과 권력은 서로 맞물리지 않으며, 대립 쌍을 이룬다. 폭력은 파괴하기 위해 세계에 간섭하는 것이다. 권력은 생각, 특히 상상 능력의 문제다. 다시 말해 권력은 생각하는 사람이 만들어내야 하는 결과물이다. 물론 무기는 내 목숨을 빼앗아야만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탈취할 수 있다. 그러나 무기는 어떤 생각을 인정하도록 나를 강제하지 못한다. 더욱이 무기는 나로 하여금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들 수 없다."


"거짓말은 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다. 자유가 있는 한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인간,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있으면서도 자유가 있는 인간이 함께 이뤄내는 작업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 생겨난다."


"인간은 자기 행동에 밑받침이 되어주는 것이라면 참으로 여긴다. 또 바로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마음에 드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 끌어다대기도 한다."


"인간은 진실이 자신이 하는 행동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때에만 진실을 목놓아 외친다."


"인간은 기꺼이 원해서 진실을 찾는 게 아니다. 인간은 진실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진실이 없이는 각 개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을 지우는 세계 안에서 우리는 바로 설 수가 없다."


"우리는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수한 현상을 보면서 어떤 것을 콕 짚어내 이름을 불러주어 이 무수함의 범위를 좁힌다. 어떤 것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수한 다른 것들은 배경으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름으로 쓰이는 단어는 해당 사물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단어는 그 사물을 이렇게 보고 싶다는 우리의 해석이다."


"세계가 근본적으로 허위라며 내쉬는 모든 한숨에도, 진실은 인간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세계를 바꿔나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힘을 발휘해왔다. … 인간들이 합리적인 목적의 관심으로 의기투합한다면, 거짓말이 들어설 공간은 사라지며, 무엇보다도 거짓말은 그 매력을 잃는다. 간교한 전술은 성당을 짓기 위한 모금은 할 수 있지만, 우리 몸을 누일 오두막 한 채도 짓지 못한다."


"정직한 자세는 우리 자신이 세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과 지식을 타인에게 노출시킨다. 그러나 나 자신을 열기로 결심하고 드러내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다. 정직함이 실패한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잘못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을 모두 이런 잘못을 바로잡으며 다른 사람의 지식으로 혜택을 보는 것, 곧 배움의 기회가 열린다. 열린 자세가 실패한다면, 이는 단순한 실패를 넘어 개인적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권력의 피안에서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대인이 없다."


"타인이 지옥이라는 말은 내가 타인의 눈길 앞에 속절없이 노출되었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진실이다. 그러나 지옥은 타인이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 세상에서 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다른 자아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장 아메리, 『이겨낼 수 없던 방랑시절』 재인용)


"우리는 상대가 진정성을 가질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속을 열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의 개방성이 진정성을 가지며,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 나는 솔직함 그 자체이며, 내 목적을 위한 어떤 수단으로 개방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또 내가 어떤 인간을 믿고, 이 믿음이 어떻게 자라나며, 그리고 이 믿음이 진실이라는 보상을 얻을지 아니면 환멸을 안길지 하는 책임 역시 나의 몫이다."(카를 야스퍼스, 『진실에 대하여』 재인용)


"이해타산을 따지는 시각으로는 전혀 설명될 수 없는 이런 신뢰의 행보는 우리에게 타인을 '너'로 만나게 할 기회를 열어준다. 이런 만남의 기회가 열리는 것은 우리가 감행한 열린 자세가 이로써 이득을 보고자 했던 타인에게 자기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우리 자신이 멈추어 서서 엶으로써 나와 세계와 숨김과 아집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게 허락할 때, 우리는 아무런 기능적 이해관계 없이 상대가 자신에게 제공된 열림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직관한다. 우리가 나를 엶으로써 상대도 나를 여는 이른 기적은 이마누엘 칸트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호의라고 부른 관점을 인간이 받아들일 때 언제나 일어난다. 이런 관점은 세계를 환히 밝혀주기 때문이다."


"열린 자세를 결심한 사람은 오로지 이런 결단으로 스스로의 보는 능력을 확장한다. '너'가 되어 달라는 제안에서 역시 '너'라고 화답하는 사람만이 거짓말의 본성을 환히 꿰고서 거짓의 피안으로 넘어가는 행보를 감행할 때 환히 밝혀지는 세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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