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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저도 중독인가요?》, 홍성민,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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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도비꼬 작성일19-07-04 15:55 조회1,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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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발표로 좀 시끌시끌했습니다. 어떤 토론 프로그램을 보니,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찬성하는 분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의 규모와 경제 논리, 게임의 순기능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토론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게임 중독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도 중독인가요?》에서 저자는 '좋은 중독'이란 없다고 합니다. 흔히 도박이나 마약 같은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만, 그 대상이 좋은 것이라면 -가령, 운동- 그것에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교에도 중독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중독 중에는 종교 중독도 있습니다. 중독은 원래 어떤 물질이나 행위로 안식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삶에 큰 안식처가 되는 종교야말로 중독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종교 중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드리는 미사의 파견 부분에 건강한 종교 생활과 중독적인 종교 생활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사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합니다. 미사의 목적은 성당에 오는 게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는 데 있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제 세상으로 '가라'고 합니다. 미사에서 듣고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가 삶으로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힘든 세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진짜 목적은 잠시 쉬어 몸과 마음을 추스른 다음, 다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새로운 각오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만약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쉬리라'고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가 너무 좋다며 내가 살아야 할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술이나 약물 중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비 종교, 유사 종교들이 대부분 그러한 태도를 보입니다. 자기들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은 중독되기 이전에 가까이하는 것조차도 멀리해야겠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을 대할 때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에 집착하여 조절력을 상실하면, 일상이 무너지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자, 어느 정도 중독의 기준에 대해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중독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고,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겠지만 저자는 진짜 해결책은 그 사람의 내면에, 그 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다른 무언가를 찾다가 어떤 물질, 행위, 또는 특정 활동이나 관계를 통해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충족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경험한 좋은 느낌이 안전함, 일치, 위로 등으로 작용하고 이 감정은 그것에 점점 더 빠져들게 하여 중독으로 이끌고 갑니다.

  중독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고 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 10,25-28).

 

"어릴 때 저(저자)는 이 구절을 계명으로 받아들였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의무라기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있고 사람들과의 사랑 안에 있어야 인간은 행복할 수 있고, 사랑 안에 살 때 인간은 그 순간에 이미 구원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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