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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스콧 라이트 지음, 김근수 옮김, 아르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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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독자 작성일19-08-29 22:25 조회1,3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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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스콧 라이트 지음, 김근수 옮김, 아르테, 2015.

 

 

내가 로메로 대주교라는 인물을 처음 안 건 10여 년 전 본 영화 〈로메로〉(1993)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건 '민중의 편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다 미사 도중 암살된 사람'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로메로 대주교의 전기적 이야기를 단순하고 투박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별다른 감흥 없이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점차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솔직한 증언(솔직하다는 건 칭찬 일색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대립하기도 하는 로메로 대주교의 인간적 모습, 그리고 '회심'이라고 부를 만큼 놀랍게 변화된 그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을 울렸다.

 

로메로는 엘살바도르 가톨릭교회의 대주교(Oscar Arnulfo Romero, 1917-1980)로,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 비폭력투쟁으로 저항하다 미사 집전 중 암살당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민중의 투사가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교회가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우려한 보수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독재정권에 맞서고 있는 사제들이나 신자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하고, 그들과 대화 중에 마찰을 빚으며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존경했던 친구로, 민중의 편에서 싸웠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처참하게 살해된 일이 그를 회심으로 이끌었다. 이 일이 있은지 한 달 후 예수회 관구장 세사르 헤레스 신부와 로메로 대주교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대주교님, 변하셨습니다. 대주교님과 관련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헤레스 신부님, 아시다시피 저는 기도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침묵하더니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 역시 배고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신학교 시절부터 저는 제 출신을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갔습니다. 엘살바도로르로 돌아오자 나는 산 미겔 주교의 비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습니다. 대주교님이 이야기를 계속하시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산티아고 데 마리아로 보내졌습니다. 지독한 가난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죠. 마시는 물 때문에 죽어가는 어린아이들과 수확기에 죽도록 일해야 하는 농장 노동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란데 신부에게 일어난 일도요……. 나는 그 친구를 존경했습니다. 루틸리오의 시신을 보면서 저는 만일 살인자들이 그가 했던 일 때문에 그를 암살했다면, 내가 그 길을 이어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계속 걸었습니다. 로마 하늘의 달빛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루카 16,19-31에는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가 나온다. 죽어 저승에서 고통받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제발 라자로를 자기 다섯 형제에게 보내서 그들만은 고통스러운 저승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 말을 들으면 된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가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로메로 대주교의 회개를 보며,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말하자면, 부자는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의 말씀(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율법)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에, 날마다 그의 집 문간에 앉아 있던 라자로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부자의 형제들이 그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면, 라자로가 (생전의 모습으로) 그들 집 문간에 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반면, 고통받고 신음하던 민중들의 모습과, 무엇보다 그란데 신부의 죽음이 로메로 대주교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로메로 대주교가 다만 자기 신념이나 틀에 갇힌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직자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때로는 자신의 태도를 질타하는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로메로 대주교의 이 같은 변화, 회심이다. 그 이후에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담대하고 용감하게 하느님 백성과 정의를 위해 투신했는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로메로 대주교가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되어간 영웅이라서 좋다. 그래야 그러한 희망의 예언자의 길로 우리 모두가, 지극히 소심하고 평범한 나도 초대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고, 그리고 나도 회개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희망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를 믿어주십시오. 누구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에게는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처하는 운명이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종, 고문, 체포 그리고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입니다." - 1970년 2월 17일


"듣기에 편안한 설교를 하기는 쉽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거룩한 말, 역사 발전과 관계 없는 말,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에 오히려 세상 어디에서 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갈등과 박해를 일으키는 말, 참된 교회가 해야 하는 말은 예언서처럼 타오르는 말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소리여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이 예언자들과 설교자들과 함께하십니다. 이들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 선포를 계속하는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 1977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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