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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과 이단심문 Q &A 101》, 존 비드마 지음,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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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도비꼬 작성일19-09-30 18:00 조회1,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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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이 상황이 개탄스럽지만, 혹시 완전한 가짜가 아닌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참된 진실을 알 수만 있다면 이 정도로 혼란을 겪지는 않을텐데.’ ‘또 역사는 후일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우리 그리스도교의 역사에도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세시대하면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일들이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군 원정과 흔히 마녀 사냥으로 여겨지는 이단심문을 떠올리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199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과한 일들이지요. 사실 교회로서도,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도 달갑지 않은 과거이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고 군대라지만 그래도 사랑이신 주님을 따르는 교인들인데, 십자군이 정말로 그렇게 잔인하게 학살하고 약탈을 했을까?’ ‘죄 없는 여인을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마녀로 몰아, 고문하고 화형에 처한 게 사실일까?’

  공포영화에서 그려지는 음산한 수도원의 모습과 전쟁·학살·처형이라는 이미지를 통한 선입견, 교황님도 사과한 일인데라는 생각으로,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십자군과 이단심문 Q & A 101입니다.

 

먼저 주목할만한 것은 예루살렘이 아랍인에게 점령된 것이 638년의 일인데,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다가 1096년이 되어서야 십자군 원정을 시작했느냐?’는 것입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유럽이 내전 같은 내부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8세기 이슬람교도의 스페인과 프랑스 침공외에도 “9세기 바이킹의 침략”, “10세기 마자르족[헝가리]의 침략이 이어진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루살렘을 정복한 원래 이슬람교도들은 온건한 경향의 아랍인으로, 그리스도인과 평화롭게 공존했으며 외국 그리스도인의 성지순례도 허가되었으나, “1000년대 초반 아랍인이 아닌 투르크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면서 십 년간 그리스도인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십자가를 불태우고 순례자들을 약탈하였습니다.

  이에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집단적 분노가 일기 시작했고, 군사적 대응이 대단히 시급해진 것이지요. ‘신성한 그리스도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전쟁의 정당성이 생긴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 당시 유럽의 종교부흥운동도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십자군의 학살은 사실입니다. 먼저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보장할 수 없었고, 투르크인들에게도 최소한 십자군만큼의 잘못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 당시 대학살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도 말합니다. 진실로 묻고 싶은 질문은 중세 전쟁의 관습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사들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전쟁에 비하더라도 극단적이었던 학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이는 어떤 이유로도 십자군을 변명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단심문십자군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화적이고 법적인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고문이단심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다른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도 고문이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시대였고, 이단자로 강력하게 의심되고 정황 증거는 충분하나 자백이 필요할 때 고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흔히 상상하는 마구잡이식 마녀 사냥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교회와 갈등을 겪은 잔다르크갈릴레이 등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십자군과 이단심문. 가톨릭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사건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몇 세기에 걸쳐 대단히 잘못 이해된 부분이 분명히 있음을, 그리스도교 군대와 심문관들이 저질렀던 잔혹 행위가 과장된 것이 분명히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잘못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지만, 잘못했다고 해서 그 잘못이 부풀려지거나 왜곡되는 것을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는 중이라고 할 때, 주변 친구들이 하나같이 동정하듯이 행운이 있기를 바라겠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예민하고, 이야기 안 하니만 못한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상처가 나으려면 치료제가 필요하고 그 치료제는 순도 100%의 진실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그런 치료제를 사용해야 상처가 다시는 덧나지 않지 않을까요? 1,00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이제는 자본과 권력을 두고 자행되는 21세기판 십자군 전쟁과 이단심문에 바로 그리스도교가 그 치료제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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