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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Weak tied》, 김용섭, 부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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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독자 작성일20-01-03 10:05 조회1,4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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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의 시대  

 

어린 시절 나에게 2020년은 SF였다. 1989KBS에서 방영한 공상과학만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본 세대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 만화에서 사람들은 폭발적 인구 증가, 자원 고갈의 위기,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데, 2020년이 현실이 된 지금 보면 꽤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만화에 나온 것처럼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고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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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무얼 읽을까 생각하다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Weak tied(김용섭, 부키, 2019)를 발견했다. 저자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트렌드 분석가, 경영전략 컨설턴트, 비즈니스 창의력 연구자로, 2013년부터 라이프 트렌드시리즈를 냈다. 2013 좀 놀아 본 오빠들의 귀환,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2017 적당한 불편, 2018 아주 멋진 가짜Classy Fake, 2019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2020 느슨한 연대Weak tied. 이 제목만으로 현시대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일 테다.


이 책은 11가지 트렌드 이슈를 문화코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와 소비의 세 범주로 나누어 다룬다(78개의 소주제가 있다). 느슨한 연대 기후 변화 대응 유튜버가 희망 직업인 알파 세대 등장 기계 인간과 바이오 해킹 애국심과 자존감을 결합한 새로운 애국주의 소유보다 공유, 경험 권력의 시대, 취향 과시의 시대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공존현실 나이의 경계를 지우다 가난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겠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서스테이너블 라이프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외로움 예찬과 동반자 산업.

 

바야흐로 느슨한 연대의 시대이다. 느슨한 관계란 서로 연결은 되었으나 아주 긴밀하거나 끈끈하지는 않은 관계, 따로 또 같이가 원활한 관계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장점은 일부 취하되,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과 복잡함을 덜어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느슨한 관계는 기존의 관계에 대한 재해석과 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트렌드의 중심에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가 있다.

 

느슨한 연대는 가정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데, 잘 알려진 역대 최저 혼인율·출생률, 가족 해체, 결혼 기피, 황혼이혼, 졸혼 등은 물론 비혼자(독신, 동거) 증가, 다양한 가족 형태의 등장은 결혼관·가족관의 변화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는 건 돈 문제만은 아니다. 결혼에 대한 비전의 부재, 이른바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혼자든 기혼자든 결혼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부정적 혹은 유보적 입장을 보인 건 가부장사회의 반향이리라.

 

기업도 느슨한 연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기업을 구성하는 세대가 달라졌고,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키워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겸직 허용, 애자일Agile(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해 유연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문화), 수평화, 퇴사 전략, 공채 폐지, 역할조직(위계조직과 상반된 개념), 사내정치 감소, 직급 파괴, 호봉제 폐지, 고용 유연성, 노조 쇠락, 기본임금, Gig 고용(비정규 프리랜서 근로형태), 원격근무 등. “우리는 스포츠 팀이지 가족이 아니다(We're a team, not a family).넷플릭스의 조직문화를 가리키는 이 문장은 이러한 현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밖에 느슨한 연대를 드러내는 트렌드 키워드는 젠더 뉴트럴(전통적인 성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성 중립주의), 차별 금지, 다문화사회, 이민국가, 셰어하우스, 취향 연대, 인싸, 소셜 네트워크, 인맥(혈연·학연·지연) 거부, 자발적 고립, 외롭지 않을 권리, 미닝아웃meaning out(드러내지 않던 자신의 취향이나 신념을 드러내는 것), 사회적 책임, 불매운동, 행동하는 소비자, 디지털유목민(디지털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연결해 소통하고 일하는 이들),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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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슈들만 봐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인터넷을 열어 낯선 용어를 찾아봤다. 책을 읽은 뒤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였다. ‘그렇구나.’ ‘어쩌지?’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시대의 징표를 읽고 거기에 복음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사명이다. 특히 혼인과 가정, 생명과 관련된 쟁점들은 세상의 트렌드와 교회의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아 현실감각과 신앙감각이 균형을 이룬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문득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빔 벤더스, 2019)가 떠올랐다. 영화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가 부여되어 해석되고 전 세계로 전파되는 교황님의 역할과 메시지에 집중한다. 교황님의 말씀은 강요가 아니라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복음의 기쁨》 14항 참조). 그분이 예수님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20년은 SF가 아니라 현실이다. 느슨한 연대의 시대, 사람을 옭아매는 촘촘한 그물로는 누구도 낚을 수 없다. 교회가 가진 그물, 내가 가진 그물을 어떻게 손질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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