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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1》, 조정래,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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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도비꼬 작성일20-03-10 12:56 조회1,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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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는 총 2권으로 된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작가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해 직접 취재하고 쓴 이야기로, 과연 '지금의 학교가 나의 학창 시절과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솔직히, '더 심해졌지,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저 혼자 결론부터 내리고 책장을 넘긴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게 사실인가?' 하고 의심하게 되는, 슬프고도 잔인한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집니다. 교육 정책은 오락가락 수시로 바뀌구요.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40조를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 학부모나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 의 목표는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졸업장은 학교에서, 공부는 학원에서'라는 말이 괜히 생기지는 않았겠지요.

 

저자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손발을 묶어놓고 몸을 묶어놓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반란군을 잡아다가 손발을 묶어놨어요. 그렇게 죽인 것이었죠. 우리 아이들이 지금 교실에서 열 시간, 열두 시간 동안 묶여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자들은 교육의 이름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이 8천여 명이었습니다. 연평균 533명인데, 지난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우리 군인들이 5,099명으로 추산된다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15년 동안 그보다 숫자가 줄어들까요? 늘어날까요?"

 

"그런데도 '내 자식만 탈 나지 않으면 상관없다.' '내 자식에게 무슨 일이 날 리 없다' 하는 무모함으로 무한 경쟁의 질주에 열을 올리느라고 딴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1권을 읽으며 가장 기대가 되었던 장바로 '학교 폭력의 뿌리'였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조마조마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와 그 존재가 얼마나 될 지는 알 수가 없는 구원자. 저는 자면서 가해자를 응징하는 꿈을 꿀 정도로 학교 폭력에 분노하였었고, 피해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구원자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의 저는 그 누구보다도 방관자였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자비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 쓰레기들에게는 혹독한 처벌만이 답이다'라고 생각했지요.

 

'아이들 중 누구도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한 명까지도 데리고 가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예. 일진, 그것은 분명히 나쁜 존재입니다. 건전하고 건강한 교육 현장을 위해서 명백히 제거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한여름 철의 잡초가 줄기만 자꾸 잘라낸다고 없어지는 겁니까? 뿌리까지 다 뽑아버려야 제거됩니다. 일진이 꼭 그렇습니다. 일진이라는 애들이 왜 생겨났습니까? 그 뿌리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너무 자명하고 찾기 쉽습니다. 다만 묵살하고, 외면하기 때문에 문제지요. 그 뿌리는 경쟁 교육, 점수 따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 교육 아닙니까? 점수 잘 따는 것만 최고로 치다 보니 낙오자를 수없이 양산해냈습니다.  일진은 동료 학생들의 가해자인 동시에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일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엄벌해 학교에서 내쫓아버린다고 합시다, 그럼 그들은 사회에 나가 뭐가 되겠습니까.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도 참 맞는 말입니다. 물론 '그런 환경에 처한하고 해서 모두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학생에게는 선택권이 있었고, 가해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잘못이 크다'라는 반론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일이, 학교 폭력의 원인을 환경결정론에서 찾을 것인지 자유의지론에 찾을 것인지 따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3-14).

  이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학교 폭력의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부모의 이기심과 비뚤어진 교육관인가요, 학생 본인의 잘못된 선택인가요, 아니면 학교와 선생님의 열의가 부족한 것인가요, 아니면 정부와 제도 탓인가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육은 백년대계, 청소년이 나라의 미래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당장의 현재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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