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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묵시록 상징]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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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의세계 작성일19-06-04 11:18 조회9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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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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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밤베르크묵시록 1000-1020 라이헤나우(Reichnau)수도원 제작, 채색 세밀화 / 밤베르크 주립도서관 소장, 1981.독일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묵시 13,18). 신구약을 통틀어 요한묵시록에만 나오는 ‘666’은 요한묵시록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신비로운 숫자이다. ‘숫자’(ἀριθμός)라는 단어는 요한묵시록에 10회 나오는데, 그중 반이 짐승과 함께 사용된다. 명확하게 짐승과 연결되어 네 번 나타나고(13,17-18),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과 관련된 천상의 장면에서 한 번 나타난다(15,2). 그렇다면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서 분명하게 짚어야 할 것은,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고대어의 알파벳은 저마다 고유한 숫자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먼저 히브리어는 22개의 알파벳이 모두 자음만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 9개의 알파벳은 1~9, 이어지는 9개의 알파벳은 10~90, 그리고 마지막 4개의 알파벳은 100단위의 숫자를 가리킨다. 더 높은 숫자를 만들려면 여러 개의 다른 알파벳을 결합하면 된다.

 

유다인들은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카발의 시대부터 성서의 단어와 표현에 숫자적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단어와 표현들을 구성하는 각각의 글자에 숫자적 가치를 부여하여 그 숫자를 합한 것을 ‘~의 숫자라는 식으로 불렀다. 예를 들어 다윗의 숫자(히브리어로 dwd)14(4+6+4)가 된다. 반대로 각 글자가 지니는 숫자의 가치를 고려하여 숫자만으로 단어나 고유명사, 또는 표현을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숫자만으로 구성된 다양한 글자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666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666을 풀이하고자 주목할 만한 노력은 지난 세기 동안 히브리어가 지닌 숫자적 가치를 셈하는 데서부터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네로 카이사르666을 지칭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는데, 이 해석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허술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그리스어로 작품을 썼고 요한묵시록의 첫 번째 독자들 역시 그리스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히브리어가 굳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역주: 요한묵시록을 쓴 저자도 그 책을 읽는 독자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들이었으므로, 히브리어의 숫자적 가치를 가지고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666을 해석하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그런데 그리스어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1세기에는 그리스어의 숫자적 가치로 단어나 표현들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몇몇 요한 묵시록 사본에서 다른 숫자들, 예컨대 616과 같은 숫자가 발견되곤 하는데, 이 숫자는 가이오스 카이사르(가이오스는 칼리굴라의 별명이다)나 테오스 카이사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스어 알파벳은 24개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데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히브리어와 같은 방식으로 각 알파벳은 숫자적 가치를 지닌다. 문자의 순서대로 십 단위에서 백 단위로 이어지는데, , 숫자 6은 예외다. 6은 대문자의 약호로만 표현되는데 그리스어 알파벳 안에서는 볼 수 없다. 여섯 번째 그리스어 알파벳 제타(ζ)는 숫자 7을 가리키고, 제타 다음에 오는 알파벳이 가리키는 숫자는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666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666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은 180년경 리옹의 이레네오가 쓴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레네오는 세 가지 해석을 제안하는데, 모두 로마 제국과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는 번영이라는 뜻을 지닌 에우안타스Euanthas’(5+400+1+50+9+1+200)이고, 두 번째는 라틴로마를 가리키는(로마 제국이나 로마의 황제) ‘라테이노스Lateinos’(30+1+300+5+10+50+70+200), 그리고 세 번째로 로마 제국의 별칭인 테이탄Teitan’(300+5+10+300+1+50)이다.

 

또 다른 해석은 성서의 숫자가 지닌 상징성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성경에서 숫자 7이 완전함과 풍성함을 가리킨다는 전제하에, 짐승에게 부여되는 666은 극단적인 불완전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7이 상징하는 완전함과 대조를 이루는 6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666을 불완전함의 극치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666의 총합이 아니라 6이라는 숫자 하나가 지니는 상징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해야 한다.

 

666을 해석하기 위해 더 살펴보아야만 할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666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이 로마 제국과 로마 황제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666의 숫자적 가치만을 고려해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알파벳에서 추론해서 오늘날의 여러 상황에 빗대어 해석하는 것은 임의적이며, 그것은 운명론적으로 고정된 해석일뿐이다. 다시 말해, 666이라는 숫자 그 자체로는 악마의 의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요한이 자신과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았던 1세기 이후의 시대를 목적으로 삼아 기술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2세기 말엽과 3세기 초반, 리옹의 이레네오와 오리게네스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그 시대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고, 이레네오와 오리게네스는 하나의 고유한 이름을 알려고 덤벼든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레네오와 오리게네스는 666을 통해 짐승의 사악한 상징성과 그 짐승이 요구하는 절대적 복종을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글 ] Jean-Pierre PrévostLes symboles de l’Apocalyse(bayard, 2012)를 대구 가톨릭신학대학의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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