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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 ‘어른이 된다는 것’ (꼰대와 어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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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의세계 작성일20-06-28 17:05 조회1,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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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 ‘어른이 된다는 것’ (꼰대와 어른의 차이)>


[출처]https://blog.naver.com/gaiavox|작성자 대지의소리 gaia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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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석 미카엘 신부

 

1분에 평균 80~90번 날개짓을 하면서, 꿀을 찾아 아주 먼 거리를 날아다니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약 5cm)라고 알려진 그 새의 이름은 "벌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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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의 상징은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벌새는 크나큰 세상에서 힘

겹게 성장하는 영화 속, 작고 여린 "은희"를 닮았습니다.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은 현실 세상 속에 상처 입고 넘어지면서, 그래도 잘 살아 보겠다고! 사랑 받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인간을 바라보며. 감독은 "벌새의 날개짓"을 떠올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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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김보라 감독)의 한 장면 -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최근 몇 년간 본 영화 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영화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저는 "벌새" 를 이야기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여러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던 기억이 납니다. 상영 당시 영화관에서만 두 번을 보았고, 최근에 또한번 보게 되어 이렇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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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무수한 일들에 더이상 질문하지 않는 것, 그것들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요?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낯선 일들, "예쁘지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누구도 그 만남을 비켜 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회에서, 종교에서, 가정에서, 타인에게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짙은 모순'과 폭력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어린' 우리는 적지 않게 당황하며 성장통을 겪습니다.

 

'은희'가 겪는 세상, 아니 우리 모두가 겪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어릴 적 듣던 동화 속 세상과는 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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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

 

가부장적인 가정과 오빠의 폭력이 은희의 마음을 찌르고, 여자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이 서럽습니다. '날라리 색출'을 하겠다며 친구 이름을 써내라는 학교 선생, 그렇게 서로를 고자질하게 만드는 선생 같지 않은 교원의 천박한 교육방식도, 성적으로 A반 B반, 왼쪽 오른쪽 따로 줄 세우는 교육현장도 너무 차갑습니다. 

 

은희는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어떤 어른도 그것에는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부와 성적만으로 한 사람의 가치가 규정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배신하고, 다정했던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면서 자꾸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변하기 쉬운 것이며, 인간이 얼마나 용렬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열네 살 은희는 낯설고 아프게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녀는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권위적이고 무서운 아버지가 춤바람 나는 모습이, 사랑 없이도 같이 살아가는 이 세상 부모들의 모습이 은희에게는 이상하게 비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자본의 폭력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의 현수막을 바라보며, "남의 집을 왜 뺏어요?"라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 따르고 좋아하던 후배가 새 학기가 되자,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며 차갑게 돌아서는 눈빛을 마주하게 됩니다.

 

열네 살 은희 눈에는 이 모든 일이 낯설고, 때로는 너무나 아프게 다가옵니다. 은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에 점점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폭발합니다. 

 

그러던 은희가 한문 학원에서 "영지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이만 먹은 생물학적 어른들 "꼰대"가 아니라, "진짜 어른"을 만나게 됩니다.

 

은희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입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은희를 공감해주며스케치북을 선물해주는 어른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쉽게 반말을 내뱉거나,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껍데기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를 품고 살아가는 흔치 않은 '어른다운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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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영지 선생님이 명심보감의 '교우'편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은희는 얼굴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에요?"

"50명? (옆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수정한다) 400명이요! "

"그러면 그 중에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명이에요?"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명심보감 교우편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은희는 그렇게 처음으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어른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은희는 세상의 벽에 부딪쳐 아플 때, 자기도 모르게 영지 선생님을 찾게 됩니다. 특별한 말이 없어도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

"응 많아. 아주 많아."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거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지 선생님은 애써 세상을 미화시키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은희와 친구가 크게 다툰 이후 처음으로 수업 시간에 재회했을 때, 화해하라는 흔한 훈계보다는 '잘린 손가락'이라는 민중가요 노래를 불러주는 선생님입니다.

 

집을 빼앗긴 철거민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은희에게 그래도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다고, 알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입니다.영화상에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그녀 역시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겪었을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많이 아파했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기쁜 일과 슬픈 일,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삶을 신비롭게 응시할 줄 알게 된, 그러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어른, 성숙한 어른이 된 그녀입니다.

 

은희는 그러한 영지 선생님을 만나면서 상처가 아물어가고,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그 성장은 영지선생님과의 애착관계에서만 유효한 '의존적 안정감'이 아니라,세상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할 상실의 아픔을 딛고서도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 때때로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건들에 좌절하면서도,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여 보며,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손가락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시선을 맞추는 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만, 끝내는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은희는 얼마 뒤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영지선생님을 잃게 됩니다. 또다시 더 크게 찾아온 그 '말도 안 되는 일' 앞에서너무나 슬프지만, 그래도 다시금 영지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지선생님을 애도하고 보내드립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심부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한참을 두들기고 소리를 질러도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한 층을 잘못 찾아간 것

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은희는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신경증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문을 두들기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원초적 불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분리불안' 내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서 오는 공포입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은 경우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이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 애착관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내면 아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신경증적 불안, 애정결핍, 분노, 중독으로 우리를 이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은희는 도약합니다. '어른스러운 어른' 단 한 명의 따뜻한 진심으로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에 새살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뼘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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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일상으로 돌아온 은희는 이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상과 사람을 단선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밝게 웃는 사람들 안에 각자의 무수한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기쁜 일들 안에 슬픔이, 나쁜 일 안에서도 햇살 한 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넓고 따뜻해집니다.


"한 명의 인간을 깊게 관찰하면, 단선적으로 누군가를 '나쁘다'라고,

혹은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단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라는걸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아주 좋은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다른 그림자들이 있고,

나쁜 사람 같이 보였던 사람인데도 굉장히 따스한 면이 있다거나... 

사람은 날마다 또 성장하는데,

어떤 한 사람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굉장히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 안에서 어느 누구도 악마도 천사도 없는, 

모두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김보라 감독 인터뷰 내용)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순투성이 무자비한 세상 속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살아보겠다고 애쓰며 파닥거리는

수많은 '벌새의 날개짓'을

따뜻하게 바라봐 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움직여가며, 

때때로 죄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염치불구하고 다시금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보고자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 아닐까요?



<영지선생님이 은희에게 보낸 편지>


은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 한다는 거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거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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