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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꽃', 그리고 키작은 자캐오 이야기 - "모두 다 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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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20-07-02 11:18 조회1,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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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꽃', 그리고 키작은 자캐오 이야기 - "모두 다 꽃이야"> 

 

 

[출처]https://blog.naver.com/gaiavox|작성자 대지의소리 gaia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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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석 미카엘 신부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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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신부님 밭에서 찍은 사진]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그 어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를 알아봐 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특별한 무엇이 된다는 것은 참 가슴 뛰는 일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루카복음의 자캐오 이야기(루카 19, 1-10)입니다. 자캐오는 잊고 지내던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찾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루카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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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내용 (루카 19,1-10)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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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609]

 

 

자캐오는 돈이 많았던 세리였고,  그 가운데에서도 세관장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로마 제국은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었으며, 세금을 걷는 권한을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기에, 당연히 유대인들 가운데에서도 세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금을 걷는 역할을 맡았던 세관장 자캐오는 돈은 잘 벌었겠지만, 같은 민족 사람들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열성인 이들에게는 민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하기도 했을 겁니다. 자캐오는 그렇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택했던 그 직업 때문에 부자가 되었지만, 늘 마음 한 켠에 열등감과 허전함이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복음 본문의​ "키가 작았다"는 표현은 꼭 물리적인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묵상 중에 그는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온전히 마음을 나눌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던 자캐오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지라도, 늘 마음 깊은 곳에는 큰 상처와 결핍,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세리, 죄인, 배신자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잊혔습니다.

 

​언젠가부터 '내 가족 자캐오', '내 친구 자캐오', '내 연인 자캐오'라는 따뜻한 부름과 시선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자캐오가 예수님이 마을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미 여러 마을에서 알려진 대단한 예언자라고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분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 안에서 내 아픔과 상처를 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 발치에서라도 그분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도통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뛰어서 나무에 오릅니다.

 

결국 자캐오의 그 간절함은 예수님을 멈춰 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분과 눈을 마주칩니다. 깊은 상처에 무뎌져 살던 그는 예수님의 눈길 안에서 "하늘의 품"​을 만납니다. 난생 처음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내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자캐오야"  하신 그 음성은 '내 존재'를 알아봐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랑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캐오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었던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줍니다. 그러면서 '너는 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너를 사랑하기에 너와 함께 머물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 자캐오는 상처 입기 전 본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구원체험'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시 그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토록 포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소리를 들을 때, 내 존재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가장 '나'다워집니다. 하느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가장 '나'와 어울리는 내가 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죄책감 없이 돌아볼 수 없는 과거가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와 심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자신이 참 못나고 하찮게 여겨질 때도 많습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 하느님께서도 나를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 24)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싫어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답니다. 어떤 모습이어도 우리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알아봐주라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고, 서로에게 꽃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때 이 세상은 꽃밭이 될거라고,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루카 17, 21) 있을 거라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모두 다 꽃이야

 

작사/작곡/편곡 류형선 | 노래 성다경 | 코러스 안정아, 내손초등학교 어린이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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