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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문화_히브리 족장과 힉소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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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24 22:55 조회2,1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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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문화

  

히브리 족장과 힉소스

김성

 

김성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집트가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로 제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 땅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기근이 들었을 때 일 년 내내 물이 풍성한 이집트로 내려가 도움을 청했고, 신약 시대 예수님의 가족은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형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이집트의 재상까지 오른 요셉이야말로 성경의 이집트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이집트를 여행 했던 유럽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요셉의 곡식 창고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에서 흘러나와 저지대인 파움 오아시스의 호수로 흐르는 하천을 아랍어로 바흐르 유셉’, 요셉 하천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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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토(Manetho)의 이스라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했다기보다 이집트를 무력으로 점령했다는 사실이 신약 시대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작품(<아피온 반박문>)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이집트의 항구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공동체는 매우 번성했다. 이 도시의 아피온(Apion)이라는 한 이집트 학자는 <유다인들에 대항함>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유다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당시 나환자였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쫓겨났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금으로 만든 당나귀를 모셔다 놓고 숭배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치욕스런 비난에 대해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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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눔호텝 3세 무덤의 힉소스 벽화]

기원전 1900년경 제12왕조 시대에 그 지방의 영주였던 크눔호텝의 무덤 벽화에는 37명의 힉소스, 즉 외국의 지도자들이 눈 화장품을 팔러 이집트를 방문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가나안 지방 출신이며 요셉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채색 옷, 독특한 수염 등으로 이집트인들과는 쉽게 구별된다.

 

그는 이 글에서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유다인들이 한때 이집트를 통치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유다인을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편 모두가 인용했던 역사 기록의 주인공 마네토는 기원전 3세기 이집트 헬리오폴리스의 사제였다. 그는 제1왕조 시대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까지 자기 나라의 역사를 모두 30왕조로 나누어 저술한 이집트 최초의 역사가였다. 비록 오늘날 그의 역사책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요세푸스의 작품에 일부 인용되었지만 힉소스(Hyksos)’라 불리는 이방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에 의하면 힉소스 민족은 북쪽에서 쳐들어와 성읍들을 불사르고 신전을 파괴했으며 이집트 민족을 학살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에 멤피스(Memphis)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가 아바리스(Avaris)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나중에 이집트에서 쫓겨날 때는 그들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나갔으며, 유다 지방에 강력한 요새인 예루살렘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베니 하산(Beni Hasan) 벽화의 아브라함(?)

1824년 영국인 학자 윌킨슨(G. Wilkinson)은 이집트 중부 지방의 유적지인 베니 하산을 방문하여 절벽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을 조사하였다. 모두 39개나 되는 이 무덤의 주인공은 중왕국 시대인 제11왕조와 제12왕조 시대의 그 지방 영주와 귀족들이었다. 이 중에서 크늄호텝 3세라 불리는 귀족 무덤의 벽화에는 농사짓는 모습과 사냥하는 장면 등, 당시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이 매우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어 있었다. 윌킨슨은 벽화 중에서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람들, 곧 독특한 턱수염을 하고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한 무리를 주목하였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산양 한 마리를 붙들고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힉소스 아비샤(Abisha the Hyksos)’로 기록되어 있었다. 또 그림의 위쪽에는 ‘37명의 힉소스들 이 눈 화장품을 팔기 위해 이집트에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윌킨슨은 바로 이들을 통해 아브라함을 비롯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족장들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무덤은 기원전 1900년경 건설된 것이어서 연대상으로도 가능한 추론이었다. 비록 이름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이집트의 한 무덤 벽화에서 히브리 족장들을 연상시키는 가나안 출신 유목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발견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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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소스와 비교되는 이집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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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인장(스캐럽) 반지

그렇다면 과연 창세기의 족장들은 이집트의 실제 역사 기록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이집트의 3천년 역사 속에서 힉소스 왕조로 알려진 제15왕조의 역사 기록은 매우 희박하여 당시 왕들의 인장 반지 몇 개 정도만 발견될 뿐이다. 라틴어로 풍뎅이를 뜻하는 이집트의 인장 반지 스캐럽(scarab)’에서 야곱(야쿱-헤르)’이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최고로 여긴 신은 태양신 (Ra)’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소똥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굴리고 가는 풍뎅이를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겨 그 형상을 부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으며, 인장으로 새겨 반지로 끼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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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수집되어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 스캐럽에는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카르투쉬(cartouche), 즉 파라오를 의미하는 타원형 테두리 안에 새겨져 있었다. 1969년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한 항구 도시 인 하이파 근처 쉬크모나(Shiqmona)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스캐럽에도 상형문자로 '야쿱-헤르가 분명히 표기되어 있으며 베를린의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함께 출토된 토기들을 통하여 이 무덤의 주인공 야곱은 기원전 1750년경의 인물로 밝혀졌다. 또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스캐럽에서도 이집트 제15왕조의 파라오임을 증명하는 표시와 함께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그는 힉소스 왕조의 두 번째 왕으로서 기원전 1600년경 통치했다. 우리는 이 조그만 인장 반지들을 통해 야곱이 당시 가나안의 왕족 이름인 동시에 이집트를 통치했던 제15왕조의 왕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900년경 화려한 채색 옷을 입은 아비샤를 비롯한 서른일곱 명의 힉소스, 기원전 1750년경 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발견된 한 도시의 왕 야곱, 그리고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서 군림했던 기원전 1600년경의 파라오 야곱 등은 모두 창세기 족장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주는 귀중한 고고학 자료이다.

 

비록 창세기에 요셉이 재상으로 등장하지만 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 라 불렸던 히브리 족장들은 파라오로 등극하여 약 100년 동안 이집트를 식민지로 통치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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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4월 3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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