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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문화_하나뿐인 신, ‘아텐’과 ‘야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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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24 23:35 조회1,3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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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문화

 

하나뿐인 신, ‘아텐야훼

김성

 

 김성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 이슬람교와 함께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이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에서 강조하는 유일신 개념은 오직 한 신만 강조하고 다른 이방신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고대 다신교 전통에서 매우 파격적인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오직 한 신만 강조하고 다른 신들을 배척하는 획기적 종교개혁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파라오는 기원전 1350년을 전후하여 17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했던 아멘호텝 4세였다. 그렇다면 파라오의 궁전에서 40년 동안 이집트 왕자로 지냈던 모세가 어떤 형태로든 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개념을 정립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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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아켄아텐의 모습]

18왕조의 아멘호랩 4세는 자신의 이름을 아켄아텐으로 바꾸고 태양의 원반을 상징하는 아텐을 유일신으로 선포하였다. 이단아 파라오로 불리는 아켄아텐의 모습은 길쭉한 얼굴에 게슴츠레한 두 눈, 긴 턱과 튀어 나온 광대뼈와 두툼한 입술 등 파라오의 전형적 모습과 전혀 딴판이었다

(이집트 룩소르 박물관).

 

영국의 이집트학자 존 윌킨슨(John Wilkinson)1824년 중부 이집트의 엘-아마르나 마을 근처에서 바위 굴 무덤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덤 벽화와 부조에 나타난 기이한 형태의 인물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분명히 이집트의 파라오를 표현했는데, 그 형상이 다른 왕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길쭉하고 가름한 얼굴에 날카롭게 찢어진 두 눈, 두툼한 입술과 튀어나온 턱, 가늘고 긴 목, 가는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와 허벅지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윌킨슨은 이 인물을 이집트인이 아니라 페르시아 시대의 낯선 외국인 통치자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유적지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후 다른 탐험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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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트아텐의 아텐 신전]

아텐의 지평이라는 의미의 아케트아텐은 중부 이집트의 나일강 동편에 위치해 있다. 아켄아텐은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아텐을 유일한 신으로 추앙한 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아텐 신전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1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자 수도가 멤피스로 옮겨지면서 이곳은 황폐해졌다.

 

하지만 1887, 잊혀졌던 이 유적지는 다시 세인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마르나 마을의 농부들은 여느 때처럼 황폐해진 농경지의 지력을 높이기 위해 마을 주변의 고대 유적지에서 기름진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곳의 고대 건축물은 대부분 진흙에 짚이나 가축의 분뇨를 짓이겨 만든 흙벽돌로 지어졌고, 오랜 세월 부식되면서 아주 훌륭한 비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 농부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진 단단한 토판 문서 몇 점을 발견하였다. 역사학자들이 해독한 결과 이 문서들은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가 이집트 욍궁에 보낸 외교문서였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아마르나 유적지가 기원전 1350년경 잠깐 동안 이집트의 왕도였던 아케트아텐(Akhetaten)’으로 밝혀진 것이다.

 

기원전 1351년 왕위에 오른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최고신 아문을 섬기는 아문교에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아문교의 사제들이 광대한 신전 영지에서 거두어들인 막대한 수입으로 사치스럽게 생활하고, 재력을 바탕으로 왕실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하여 부정부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원성이 드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전통 신들 가운데 태양의 원반으로 알려진 아텐을 깊이 숭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문교의 부정적 모습을 드러내고 새로운 종교인 아텐교를 세우고자 테베에 아텐 신전을 건설하였다. 또 자신의 이름을 아문 신에서 비롯된 아멘호텝에서 아텐 신의 복을 받은 자라는 뜻의 아켄아텐으로 고쳤다. 나아가 아문 신전들을 폐쇄하고 사제들을 해산시켰으며, 아문 신의 이름을 정으로 쪼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신 아텐을 새겼다. 역사상 최초로 이방 종교의 성상과 이름을 체계적으로 훼손시키는 종교 탄압을 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켄아텐이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는데 기존의 수도 테베는 적절치 않았다. 테베가 감추어진 신아문의 전통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켄아텐은 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외딴 곳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그곳을 아케트아텐’, 아텐의 지평이라고 명명하였다.

 

아켄아텐이 새로 도입한 아텐교의 유일신 개념은 왕의 대부였던 아이(Ay)의 무덤에서 발견된 <아텐 찬양시>에서 비롯되었다. 이 찬양시에는 아텐만 유일하며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때부터 아켄아텐의 종교개혁은 곧 아텐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였고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교와 일맥상통한다는 해석이 등장하였다. 심지어 이집트의 <아텐 찬양시>를 야훼를 태양으로 비유한 구약성경의 시편 104편과 비교하는 연구까지 등장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1937년에 발표한 논문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모세와 아텐교 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풀어 나갔다.

 

모세는 아켄아텐 시절에 고센 땅의 총독으로서 그곳에 정착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치하였다. 파라오가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유일신 아텐을 강조하자 모세도 이에 크나큰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아텐교는 파라오의 죽음과 함께 17년 만에 막을 내렸고 모세는 크나큰 실망에 잠겼다. 낙담한 그는 자신이 다스렸던 고센 땅의 억압받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 희망을 걸었다. 따라서 그는 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였고 시나이 산에서 유일신을 강조하는 야훼의 십계명을 받아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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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텐 숭배]

아텐의 모습은 태양에서 여러 개의 빛이 나오며 그 끝에 생명을 뜻하는 앙크를 부여하는 손의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켄아텐만 아텐의 유일한 제사장이며 그에게서 생명을 받는다(기원전 14세기, 이잡트 카이로 박물관).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개념을 아켄아텐의 종교개혁과 직접 연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켄아텐의 경우 여러 가지 구체적 증거가 뒷받침 된 역사적 사건이지만, 이집트 탈출 사건이나 모세의 역사성은 아직도 논란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또 아텐교는 이집트의 태양 숭배 전통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매우 짧은 기간 존속했기 때문에, 과연 수천년 동안 전해 온 다신교가 하루아침에 유일신교로 바뀔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신앙 고백이 야훼는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분이라는 점에서, 아켄아텐의 종교 개혁이 모세의 야훼교 확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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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5월 398호 

http://www.with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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