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바로 알기

랍비는 유대 인들의 스승이다

허영엽 마티아(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강연하는 시세 헤셀 랍비.]

라삐는 유다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일반의 유다인들을 대신하여 연구하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유다인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유다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라삐가 참여하여 개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라삐’란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라뿌니(rabboni)라고도 한다(요한 20,16 참조). 구약성경에서 ‘라’ 호칭은 일반적으로 관직을 가진 훌륭한 사람들을 의미했다. 이 용어는 1세기에 이르러 보편화되었고, 사도 시대 이후에는 유다교의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일반적으로 1세기경부터 쓰기 시작한 ‘라삐’라는 용어는 히브리어에서 ‘교사’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라삐는 교육활동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유다교의 종교행사와 각종 의식을 주재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와 봉사활동에도 관여하며, 여러 형태의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공식으로 임명받은 라삐가 없는 경우 공동체 내에 의식을 행할 만한 경건함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라삐의 역할을 수행할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유다인이 20여 가구만 되면 그들의 삶에서 필수적인 회당을 만들어 라삐를 모시게 된다. 라삐는 유다인 학교의 선생으로서의 책임과 회당의 관리와 설교를 맡는다. 14세기 이후 라삐들에게 봉급이 지급되었다. 라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있을 때는 그들의 직책수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라삐들은 직업을 가지면서 시간제 봉사직으로 라삐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과거에 로마인들은 유다인을 말살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인 학교를 폐쇄시키고, 예배와 민족적인 축제를 금하고, 유다인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책을 불태우고, 라삐의 교육까지도 금하기도 했다. 라삐가 없다는 것은 바로 유다인의 삶의 기초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교육을 마친 라삐의 임명식에 참석한 사람이나 라삐를 임명한 사람 모두를 가리지 않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라삐의 지위에 상·하나 정해진 서열은 없고 라삐들끼리 어떤 종류의 단체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라삐가 더 지혜롭다고 인정되면, 자연히 그 라삐가 많은 유다인의 어려운 질문이나 복잡한 의식을 주재하는 지도자로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라삐가 되는 과정은 까다롭고 엄격하다. 예를 들어 라삐가 되는 미국의 학교는 대학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먼저 일반 대학에서 학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라삐가 되기 위한 시험은 성경, 히브리어, 아랍어, 이스라엘의 역사, 유다 문학, 법률, 심리학, 설교학, 교육학, 철학 등의 시험과 몇 편의 논문도 써야 한다. 그리고 4년에서 6년 동안에 탈무드를 중급과정부터 공부해야 한다. 라삐가 되기 위한 공부 중에서도 가장 기본과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탈무드이다. 탈무드의 공부만은 일반 교수가 아닌 탁월한 지혜를 지닌 인격자가 맡게 된다.

유다교에서는 특히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에 반해 어떠한 장소나 지역은 별로 중요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역이란 말은 쓰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라삐를 ‘성인’이라고 존경하고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라삐들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삐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한다.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과 지도자가 국가와 사회에 많다는 건 분명히 부러운 일이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5년 11월 3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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