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 대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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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12-18 01:43 조회2,2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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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 대제국
허영엽 마티아(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바빌로니이는 현재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페르샤만에 이르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하류 유역에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동쪽 지역이었다. 특히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인 함무라비는 가까운 이웃을 평정하여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아시리아도 점령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기원전 1530년 무렵 히타이트인의 침입으로 결국 바빌로니아도 멸망하였다.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 후에 신바빌로니아 시대가 성립하여 번영을 되찾았다. 영원한 강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진리를 말해주듯이 강대한 신바빌로니아 제국도 1세기도 채 못 되어,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에 멸망되고 말았다.
남북 왕국이 분리된 후, 남쪽 유다 왕국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기원전 722년경)한 후에도 존속해 나갔다. 남쪽 유다 왕국은 수도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솔로몬의 아들 여로보암으로부터 20명의 왕이 계승하여 왕국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2세(기원전 606-561)에 의하여 사상 유래 없는 침략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도시 전체는 약탈당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많은 유다인들이 학살당했고 수천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바빌로니아까지 약 1300km에 이르는 죽음의 길을 끌려갔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고 바빌로니아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유다인들은 이 사건을 우상 숭배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보고 유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구약성서에는 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다 왕국의 정복, 바빌로니 아의 유배와 귀환, 바빌로니아의 함락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횡포에 분노하여 바빌로니아의 멸망을 예언했다. 이처럼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 나라였다. 성서에서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비참한 유배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바빌로니아 유배 때의 포로 생활의 괴로움을 노래한 시편 137편 등은 유다인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바빌로니아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홀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편 137,1-6)
유다인들은 지금도 이 시편을 읊으며 자신들의 조상들이 겪었던 비참한 역사를 기억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을 때 신앙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왜 하느님이 약속하신 거룩한 땅이 적에게 유린당하고 하느님은 왜 자신들을 버렸는가?” 하는 실존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이처럼 바빌로니아 유배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최악의 고난 시대였지만 동시에 종교적으로도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대였다. 많은 위대한 예언자가 배출된 것도 바로 이 시대였다. 인간의 역사는 풍요와 안정이 꼭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신앙적인 의미에서는 더 그렇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5년 7월 3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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