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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_그리스도의 탄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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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6 17:58 조회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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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


그리스도의 탄생

김재완 요한(교수 · 고등과학원 · 물리학) 

  

우리는 자유의지를 믿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아이작 B.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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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지만 어려서 가톨릭 계통의 학교에서 배웠고 매우 종교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연설이나 글 중에서 종교에 관한 부분들을 읽어 보면 아인슈타인이 상당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천주교인이 갖고 있는 종교관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적인 인과율과 맞지 않는 ‘인격적인 신’을 종교인들이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신은 이 심오한 우주의 신비를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신은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었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그런 인격적인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신관神親은 그가 양자물리학에 대하여 언급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결정론적인 고전 물리학과 달리 양자물리학은 측정결과가 확률적으로 정해진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성립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양자물리학의 확률론적인 면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양자물리학의 확률적인 면을 아인슈타인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현재까지의 실험결과를 보면 양자물리학이 옳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의 결정론적인 세계관에 결정타가 된다.

 

최근 프린스턴대학교의 저명한 수학자 콘웨이(Conway)와 코헨(Kochen)은 양자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이 우주에 적어도 한 실험자가 자유의지가 있으면 물질도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한다.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질문자가 그게 정말 ‘자유의지인지 아니면 단순한 ‘마구잡이(random) 현상인지 물으니, 그걸 어떻게 부르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많은 철학자와 소설가들의 주제가 되었던 자유의지는 바로 창세기의 ‘인간의 타락’에 나온다. 하느님은 왜 인간이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이 질문은 수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인간의 독립성은 자유의지를 의미하고, 이는 타락의 가능성으로 불가피하게 이어진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주사위를 던지신이다. 부활 전야미사에서 사제가 읊는 노래(부활 찬송)에 나오는, 성 우구스티노가 인간의 타락을 일컫는 ‘오, 복된 탓이여!(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에서 필자는 전율하는 심오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반대로, 성경을 보면 “인격적인 - 사람을 닮은, 아니 사람이 닮은”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 역사에 개입하고 계신다. 우선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탈출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셨고, 구약의 역사 전체에 걸쳐 예언자를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을 질책하고 다스리신다. 마침내 구세주를 보내시고, 교회를 통해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신다.

 

그런 한편 하느님의 섭리는 때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전지전능한 하느님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의 상황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성경이 이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졌을까. 아니 그보다 앞서 하느님이 정말로 계시다는 말인가.

 

이러한 고민은 수천 수만 년 전 사람들도 하였고,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이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인간이 해낸 것도 많고 이해하는 것도 많고 놀라울 정도이지만, 인간 그 자체를 포함하여 이 우주에는 더 크고 많은 것이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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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첫머리에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고 밝히면서 이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이 나오지만, 이것을 현대 과학이 이해하고 있는 우주의 시작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공간과 시간의 창조, 무생물의 창조, 생물의 창조,그다음에 이어지는 인간의 창조가 과학적인 이해와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진화론과 다르니 성경은 틀렸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래서 오히려 성경과 다른 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최첨단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준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들으려면 당시의 세계관을,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하느님은 유한한 인간을 위해 당신을 조금씩 내보이시는 ‘계시’(revelation)라는 방법을 택하셨는데,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을 주셨다면 그걸 인간이 알아듣고 받아들였을까. 특수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과 DNA를 창세기에 알려주셨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했을까. 하느님은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알려주셨던 것이다.

 

과학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한 체계가 아니다. 그 역시 점차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다. 혼돈(카오스)과 양자물리학을 연구한 필자는 천주교회의 가르침이 어쩌면 그렇게 오묘하게 현대 물리학의 여러 의미들과 맞닿아 있는지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잘못된 믿음을 물리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현대 과학이 없던 당시의 사람들도 구원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1월 358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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