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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_​​태중의 아기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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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7 14:30 조회2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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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


태중의 아기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서정욱 미카엘(교수 · 서울대의대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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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되뇌어도 지나치지 않는 말씀의 깊은 뜻을 조금 들추어보자. 40주간의 임신을 마치고 태어나는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는 엄마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임신 초기의 입덧과 불어나는 체중, 쏟아지는 졸음, 축구선수와 같은 개구쟁이를 몸속에 품고 있다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배불뚝이의 거만한 자세를 귀엽게 봐주시는 어르신과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 모두가 내 편이다.

 

엄마들은 임신 기간 동안 행복함과 함께 신비로움과 경외로움을 느낀다. 성스러운 아기의 탄생에 대한 순종과 사랑을 다짐하며, 그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모두 받아들이고 감싸 안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생명임을 의심하지 않으며 이제 어른스럽게 베푸는 인생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의 시작은 외할머니에게서 처음 나타난다. 남자의 정자는 계속 세포분열을 통해서 생산되지만 여자의 난자는 태어날 때 만들어진 세포를 매달 몇 개씩 소비하면서 일생을 보낸다. 따라서 내가 태어나기 위해 사용된 난자는 어머니가 외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그 세포이다. 수만 개의 정자가 경쟁을 해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난자 역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달맞이꽃이 피어나듯이 이달의 배란에 사용될 세포가 정해지고 그중의 일부가 정상 난자로 배출된다. 매월 1개씩 배출되는 난자 중에서도 임자를 만나 생명체가 되려면 또 한 번 선택받아야 한다.

 

그러나 임신에 성공을 했다고 모두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울음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아기, 숨을 쉬어 보지 못하고 떠나가 버리는 생명도 적지 않다. 때로는 임신 도중에 인공유산으로 쓰러지는 아기도 많다. 한마디로 생명이 탄생하는 곳은 에덴의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라 전쟁터처럼 피로 얼룩진 처절함이다.

 

요즘 산모는 임신 중 초음파를 통해서 배 속의 아기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검사를 받는다. 아기의 발육과 자세를 확인하고 안전한 분만과 건강한 아기 탄생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또한 아기 심장과 온몸을 둘러보아 기형아로 태어날 것인지 판단한다. 아기의 손가락도 세어 볼 수 있고 아들딸을 구별할 수도 있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행복의 순간을 뒤로 하고 산모나 가족 모두에게 초죽음이다. 의사의 한마디에 상황은 달라진다. 조금은 이상하지만 정상인 경우도 있고, 이상한 부분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심실중격결손증이라는 선천성 심장병은 태어난 후 수술하면 그만이다. 언청이의 경우 보기에는 흉하지만 살아 가는 데 지장이 없고 수술하면 된다. 이런 병 때문에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짓이다. 태어난 후 치료할 수 있는 병인지 치료해도 살릴 수 없는 병인지 판단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산모의 치료비 걱정 때문에 생명을 빼앗기는 아기도 있다. 그러나 산모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낳아 치료하라는 것은 독선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마음에서 하고 싶은 말(마음)과 실제 진료실에서 하는 말(실제)에는 차이가 있다. 

 

마음: “이 아이는 아주 정상입니다. 잘 키우십시오.”

실제: "아이가, 정상인지 1달 후 다시 검사해야 되겠습니다.”

 

마음: “이 아이는 아주 작은 기형이 있지만, 수술만 해주면 건강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잘 키우십시오."

실제: 이 아이는 기형이 있어 태어난 후 수술 받아야 합니다. 수술이 잘되면 정상으로 크지만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 “이 아이는 기형이 좀 심각합니다만, 수술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장애인으로 살겠지만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열심히 키우십시오.”

실제: “이 아이 기형은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꼭 포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는 일 중에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할 일들도 적지 않다. 태아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사전 검열을 하겠다는 것부터 오만이자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는 신의 영역에 더 가까이 간다. 살아 있음과 죽음을 판정하는 일, 그리고 살아갈 수 있음과 죽을 운명임을 판단하는 일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진실과 창조주의 뜻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악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 산모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기보다는 걱정과 부담을 안겨주기 일쑤이다. 태아 성감별 등은 산모에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기형은 미리 걱정시키는 것보다 나중에 원망 듣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중에 의료인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억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주님의 사랑을 접어 두고 현실적인 이기심을 선택한다.

  

임신한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수호자로서 누구보다도,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처음 임신을 한 젊은 어머니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병원에 가서 진찰대에 눕는다는 것조차 부끄럽고 두렵다. 주님께 맡기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산모에게 보이는 의사는 사랑이 넘치는 주님이 아니라 냉정하고 무서워 보이는 심판자이다. 촛불처럼 희망을 간직하는 젊은 엄마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산부인과 의사나 간호사를 나무랄 수도 없다. 주님의 사랑으로 무장을 하고, 강하면서도 다정한 의사가 되려고 하지만 여전히 두터운 현실의 벽은 어쩔 수 없다.

 

진찰대의 산모를 성모님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태중의 아기를 예수님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면 어떨까? 산모의 가족이나 의사, 간호사는 주님의 고통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사랑과 용서, 신뢰와 포용력으로 충만할 수 없을까?

 

지금도 많은 예수님이 태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계신다. 리 마음에 오셔야 할 예수님은 아직도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계신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8월 365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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