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1 서브비주얼

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_​​죽음이 남긴 것(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7 15:35 조회237회 댓글0건

본문

과학자가 보는 성경 이야기


죽음이 남긴 것

서정욱 미카엘(교수 · 서울대의대 도서관장) 

 

 

2003년 8월 청년성서모임 341차 마르코 연수를 받았습니다. 임병헌 신부님의 구수한 강의와 수지 성모교육원의 조용한 환경이 잘 어울렸습니다. 창세기 연수에서 사랑을 느꼈고, 탈출기 연수에서는 열정과 추진력을 얻었으며, 마르코 연수에서는 성숙된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3박 4일을 정리하는 파견미사에 아내와 제자들이 함께 해 주었습니다.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기다리는 세상은 정말 험난하였습니다. 핸드폰을 다시 켜자 처음 걸려온 전화는 병원 전공의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공의 2년차이던 재훈군은 여름휴가를 받아 강릉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익사한 것이었습니다.

 

축제와도 같은 파견미사에서 저는 이 끔찍한 사고를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인사를 나눈 후 교육원을 떠나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면서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바로 고속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빈소가 차려진 상가에 문상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죽음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동료 전공의 두 명과 고인의 친척 한 분, 영안실 직원 그리고 경찰이 전부였습니다.

 

 

481891b3fd92bce7168a808f72a285a9_1536301

 

믿기지 않는 일을 당한 우리에게는 놀라움과 분노, 의혹과 비탄, 감정과 이성, 도덕과 정의, 예절과 사랑이 모두 뒤엉켜 있을 뿐, 아무런 개념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믿기지 않는 죽음이 있을 뿐 어떤 말도 항의도 통곡도 없었습니다.

 

새벽 2시쯤 그의 부모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우선 죽음이 사실인지 확인하였습니다. 영안실 직원과 경찰이 조사했지만 왜 죽었는지, 누구 때문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실만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습니다. 죽음 이후 아무도 없던 혼돈의 6시간, 가족이 오기 전 4시간 그리고 그 이후 2시간. 혼돈의 시간이 반나절이나 흐른 후에야 빈소를 만드는 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죽음을 인정하고 빈소를 차리는 절차가 시작되었습니 다. 빈소에 촛불을 켜고, 사진을 준비하고, 조화를 주문해서 양 옆에 놓고, 향을 피웠습니다.

 

2003년 8월 3일 오후,재훈 군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누구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미소를 잃지 않던 재훈 군을 기억하는 우리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의 죽음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재훈 군은 아버님과 어머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바르게 살아가라는 부모님의 가르침과 몸으로 베푸시는 부모님의 사랑은 재훈 군에게 큰 스승이었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던 그의 표정은 그의 부모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은 남을 따르는 길이면서도 동료와 선후배를 이끄는 길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치료법을 꿈꾸며 학문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없는 그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된 것도 새로운 것을 찾던 그의 외로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누구는 병으로 죽고, 누구는 죄를 지어서 죽고, 누구는 돈이 없어서 죽고,누구는 남을 위해서 죽고, 누구는 남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스러운 죽음의 질서 앞에서, 도대체 왜 그에게 죽음이 왔는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그를 왜 데려가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재훈 군의 죽음이 왜 우리에게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죽음의 질서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재훈 군의 영혼이, 우리를 바라보며 짓고 있는 그의 미소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31년을 살다가 우리보다 먼저 떠난 재훈 군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무엇일까요? 비탄에 빠져 헤매는 우리의 나약함일까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죽음을 우리에게 내린 야속한 세상에 대한 분노일까요? 어차피 죽을 인생 적당히 즐기며 살자고 하는 현실도피일까요?

 

  재훈 군은 분명히 말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힘내세요. 동생 그리고 가족, 친구, 선후배 여러분, 당신들은 진정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을 더 멋지게 살아보려고 했던 재훈이의 욕심을 용서해 주세요.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 재훈이의 욕심과 노력을 좀 더 의미 있게 완성해 주세요.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죽음 아닙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완성시키려는 또 다른 사랑이랍니다.

 

우리들이 헝클어진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좀 더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그가 희생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고 열심히 살 것입니다. 그의 꿈과 십자가의 인생을 우리가 나눠 지는 것뿐입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병리과 의사인 후배의 주검에 대하여 부검이 시행되었습니다. 부검 역시 동료 병리과 의사가 집도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병원의 일손도 더 부족해지고 죽음과 생명을 연구할 의사 한사람도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것은,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11월 368호 

http://www.withbible.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