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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3)_‘히브리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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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1 22:50 조회1,4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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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


‘히브리인은 누구인가?

배철현(교수 ∙ 서울대학교 ∙ 종교학과)

 

창세 39,14기에 요셉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하인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 좀 보아라. 우리를 희롱하라고 주인께서 저 히브리 녀석을 데려다 놓으셨구나.”

이 구절에서 성경 기자는 요셉을 ‘히브리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인’이란 단어는 모두 34회 등장하여, 이른바 인종을 나타내는 명사(nomen gentilicium)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의 특징 중 하나는 이집트인들이나 필리스티아인들이 ‘에베르’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당시 티로-팔레스티나의 가나안인들, 프리아인들과 구분할 때 사용했다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아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립하기 전, 기원전 2000년대 고대 근동 지역, 특히 티로-팔레스티나 지역에서 배회하던 종족이다. 대체로 ‘히브리인’은 외국인들에 의해 원原히브리인들을 비하하여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거나, 스스로 다른 종족과 구분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힐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들이 기원전 1100년경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한 후에,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인’이라는 단어는 창세 10,24에 언급된 지명 ‘에베르’에서 파생되었지만, 에베르 지역 출신 모두, 예를 들어 아람인들,  아랍인들이 모두 ‘히브리인’은 아니다.

 

창세 39,14에 언급된 ‘히브리인’이라는 표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아브라함의 시대인 기원전 19-8세기에 발견된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문헌에 유사한 인종들로 등장한다. 이들은 수메르어로는 ‘사가쯔(SAGAZ)’, 아카드어로는 ‘아피루(hapiru/hapiru)’로 등장한다. 이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사회 ∙ 경제 ∙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고대 근동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 당시 아피루들에 대한 기록이 ‘아마르나 서신’에 생생히 남아 있다. 1887년에 한 이집트 농부 여인이 ‘텔 엘 아마르 나’라는 곳에서 (쐐기 문자로 쓰인 약 300개의 토판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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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나 도시 복원도]

 

모두 540개의 토판 문서가 발굴되어 그 가운데 현재까지 378개의 토판이 해독 출간되었다. 텔 엘 아마르나(아케나톤)는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 신을 최고신으로 섬겨 이집트 유일신론을 개창한,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아켄아텐)가 카이로에서 약 240km 남쪽에 건설했던 새 수도였다. 그 서신들은 대부분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Amumhotep III : 기원전 1402-1363)와 아켄아텐(기원전 1363-1347)에게 보낸 외교 문서로, 대부분 팔레스티나 도시 국가에 임명되었던 총독(governors)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다.

 

‘아마르나 서신 가운데 아피루가 등장한다. 기원전 16세기 고대 근동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특히 마을 문화에서 도시 문화로 변화하면서, 신흥 왕족과 귀족 계층이 형성되고 빈부 격차도 심화되었다. 이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계급은 왕족들(sarrum), 소작-자유인들(awilum), 그리고 노예들(wardum)로 나뉘었다. 왕족들은  일정한 땅을 자유인들에게 분할하여 농사를 짓게 하고 일정한 세금을 거두어들인다. 그러나 일정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소작농들은 노예로 전락하거나, 도시를 떠나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아피루들이다. 점차 수가 많아진 이들은 기원전 16세기부터 가나안의 도시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때는 성벽들이 무너지고 어떤 지역은 사막화되는 시기로, 도시 문화가 유목과 약탈 문화로 대치되면서 안전이 위협받는 시기였다.

 

이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팔레스티나 전역과 이집트까지 내려간다. 창세 39장 이하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히브리인’이란 표현은 포티파르의 아내가 요셉의 준수함을 보고 유혹을 하다 거절당하자, 포보티파르에게 요셉을 모함하는 내용에서 나온다:

 

“당신이 데려다 놓으신 저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어요?” (창세 39,17).

창세 39,19에는 아예 ‘히브리’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당신 종이 나에게 이렇게 했어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인’은 거의 ‘종’과 같은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고대 근동의 문헌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마르나 서신’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추구했던 떠돌이 집단이었다. ‘아마르나 서신’에 의하면, 그들은 가나안의 여러 도시에 흩어져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개 이들 아피루들은 “이집트의 권위에 도전하는 무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아피루가 히브리인이라는 가정을 입증시켜 줄 수 있는 언어학적 혹은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 편지들은 아브라함,모세, 후에 여호수아기와 판관기의 배경을 이루는 팔레스티나의 격동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가나안의 여러 도시가 분할되어 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는 ‘아마르나 서신’의 증언은 여호수아기와 판관기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아마르나 서신’에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사람 모두를 가나안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성경은 그곳에서 활동했던 여러 민족 집단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마르나 서신’의 내용과 성경의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아피루들이 히브리인이라는 결정적인 근거도 없다. 하지만 히브리인 역시 기원전 14세기에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용병으로,때로는 약탈 세력으로 가나안을 위협했던 무리였음을 감안할 때 양자의 관계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음에 소개하는 서신들은 이집트 파라오의 세력이 팔레스티나에서 거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된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이집트 왕궁에서 파견한 봉건 제후들 가운데 몇몇은 이집트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다른 무리는 마을을 약탈하고 낙타 상인들을 습격했던 아피루 집단과 연대한다. 이 편지들 가운데 많은 내용들은 이집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반면, 다른 편지들은 이집트 왕궁 관리들의 처사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다음은 아마르나 서신 244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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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파라오,나의 주, 나의 태양 

발신: 비리디야, 므기또 총독 


당신의 종은 파라오의 발에 일곱 번씩 일곱 번 절함으로써 충성의 맹세를 갱신합니다. 파라오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파라오께서 자기 궁수를 이집트로 소환한 이후에, 스켐의 총독 라바유는 내 영토를 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양털을 깎을 수도 없고, 라바유의 군대가 두려워도 그 도시를 떠날 수조차 없습니다. 당신께서 궁수들을 대체하지 않으셨기에, 라바유는 지금 므기또 자체를 공격하고도 남을 힘이 있습니다. 만약 파라오께서 그 도시(므기또)를 적절하게 강화하지 않으신다면, 라바유는 그 도시를 점령할 것입니다. 므기또 백성들은 이미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는 파라오에게 바라오니, 백 명의 군사를 보내 므기또를 라바유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여지없이 이 도시를 점령할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 거주하다가 이들의 하느님을 새로 발견하였다. 그 하느님의 이름은 바로 야훼였다. 이전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신들처럼 왕족들, 귀족들만의 신이 아니라, 노예들의 하느님,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 다음은 하느님이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이다(탈출 3,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이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는 어두운 현실에, 환한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 야훼이다. 이들이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히브리인’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이스라엘의 자손’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변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 기원전 18-12세기: ‘히브리인’: 인종적 또는 사회학적인 용어

나. 기원전 11-10세기 : ‘이스라엘’: 왕정 시대 인종 ∙ 사회 ∙ 정치적인 용어

다. 기원전 9세기 이후: ‘유다인’: 왕정 시대 이후 인종적 또는 종교 ∙ 사회학적인 용어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이들은 자신들이 떠돌이 신세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종들에 대해 특별히 배려한다. 예를 들어 ‘종에 대한 규정’(탈출 21,1-11; 신명 15,12-18)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은 항상 자신들이 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가난한 자, 힘없는 자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의 신앙 고백이라고 여기는 신명 15,12-18은 이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12 “너희 동족인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희에게 팔려 와서, 여섯 해 동안 너희의 종으로 일할 경우, 일곱째 해에는 그를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한다.


13 너희가 그를 자유로이 놓아줄 때, 그를 빈손으로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그에게 너희의 양 떼와 타작마당과 술틀에서 넉넉히 내주어야 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것을 그에게도 주어야 하는 것이다.


15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해 내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16 그러나 그 종이 너희와 너희 집안을 사랑하고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너희에게 ‘저는 주인님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17 너희는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어라. 그러면 그는 평생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너희의 여종에게도 똑같이 하여라.

 

18 너희는 그를 자유로이 놓아줄 때에 그것을 언많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여섯 해 동안 품팔이꾼 삯의 갑절만큼이나 너희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야훼 하느님은 바로 이런 자들의 신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린된 사람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없다고 신에게 고백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히브리인이다. 따라서 야훼를 신으로 올바로 모시기 위해서는 세상의 가치로부터 스스로 ‘도망’치려고 노력하고, 겸허한 자세로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12월 369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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