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1 서브비주얼

근동 언어와 성경(4)_유혹: 하느님의 선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1 22:52 조회132회 댓글0건

본문

근동 언어와 성경


유혹: 하느님의 선물

배철현(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이 세상에 악은 존재하는가? 악을 조정하는 사탄이나 악마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흔히 이원론으로 세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원론(dualism)은 이 세상의 현상들을 상이한 두 가지 원칙을 기초로 설명한다. 데카르트(Descartes)는 인간의 마음이 몸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공간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인간은 육체와 비육체 곧 정신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원론의 흔적은 선악의 싸움, 혹은 하늘 신들땅 신들이 싸우는 내용의 고대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 이론적인 체계가 잡히진 않았지만 고대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원론을 원시 이원론(primitive dualism)’이라 부르자. 질서를 통해 문명을 묘사하려는 창조 신화에서 하늘 신들은 땅에서 생겨난 물로 이루어진 혼돈과 연관된, 용처럼 생긴 괴물을 정복한다. 창세 1장에서 히브리인들의 신은 이런 고대 근동의 신화처럼 우주적인 선악의 대결이 아닌, 신의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화소들을 이스라엘의 신인 주님(야훼)과 바다의 싸움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원시 이원론은 조로아스터교를 통해 신들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 빛과 어둠을 추종하는 인간 사이의 갈등으로 변한다. 조로아스터교 신화들은 세상이 선과 악의 싸움 사이에 있다고 보았다. 조로아스터교를 따르는 자들은 선의 마지막 승리를 위해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구별하는 과정을 돕는다. 이원론은 신화적이며, 우주적이고, 윤리적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윤리적인 삶은 빛의 승리를 돕기 위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전통에는 이런 이원론이 없다. 우리가 흔히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탄, 아랍어 및 아람어와 같은 셈족어이면서도 유사한 단어가 없는, 구약성경에서만 발견되는 히브리어이다. ‘사탄이란 히브리어 동사는 구약성경에서 여섯 번 등장한다(시편 38,21; 71,13; 109,4.20.29; 즈카 3,1 참조).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중상하는 자이다. ‘사탄이란 단어가 동사로 모략하다고발(적대)하다로 쓰여 각각 시편 38,21; 71,13에서 언급된다: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 제가 선을 추구한다고 저를 공격합니다(사탄)(시편 38,21).


저를 적대하는 자들이(사타님) 부끄러워하며 사라지게 하소서. 저의 불행을 꾀하는 자들이 모욕과 수치로 뒤덮이게 하소서”(시편 71,13).

9e27164fdd36cf9a5738a43e63b29d46_1536677
[주님의 천사와 사탄, 12세기, 프레스코, 국립 카탈루나 미술관, 스페인.]

 

이 단어의 두 가지 의미인 모략하다고발하다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모략하다는 죄가 없는 대상에게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죄를 전가하는 행위이며, ‘고발하다는 그 대상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하기 위해 죄를 가정하는 행위이다.

 

위에 언급한 문장에서 시편 기자는 자기를 음해하려고 하는 자들을 중상모략자라고 주장한다. ‘사탄이란 히브리어 동사는 명사로도 사용된다. 즉 사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과 대결하는 악신이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언급된 사탄은 천상에서 신적인 존재의 일원으로 주(야훼) 하느님의 통제를 받는다. 1장에는 천상의 존재들이 모여 주님(야훼)을 모시는 천상 회의 장면이 나온다. 고대 근동인들은 인간사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신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믿었다. 다음은 전형적인 고대 근동의 신들의 모임인데, 사탄도 하느님의 아들들가운데 한 명으로 묘사된다:

 

6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7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하고 대답하자,

8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9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11”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12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1,6-12).

1장에서는 사탄에 히브리어 정관사가 붙어 직역을 하자면 그 사탄’(-사탄)이 된다. 문제는 사탄이 신들의 모임의 일원인가, 아니면 신들의 모임에 침입한 자인가이다. 침입자라는 의견은 주님께서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라는 질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침입자로서의 사탄보다는 주님(야훼)께서 임무를 주어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 돌아온 신들의 모임의 일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장과 2장만이 성경 전체를 통해 하느님과 사탄이 대화하는 장면을 싣고 있다.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행방을 두 번 질문하고(1,7; 2,2), 곧이어 욥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동방 세계의 가장 완벽한 의인이라고 칭찬한다(1,8; 2,3). 그러나 사탄은 이런 욥의 의인됨에 탄복하지 않는다. 사탄은 간접적으로 하느님께 도전한다. 그에 의하면 욥은 자신을 위한 이기심으로 하느님을 따를 뿐이며, 욥의 신앙심을 지켜 주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손길)뿐이라고 주장한다. 사탄은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1,9) 하고 반문한다. 하느님은 사탄에게 이 의심을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위해서 욥을 시험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사탄은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허락 아래서 인간을 시험하는 하느님의 도구인 셈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사탄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능력 아래에 있다. 대표적인 예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이야기(마태 4,1-11)이다.

 

1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마태 4,1-2).

여기에서 그리스어인 디아볼로스는 히브리어의 사탄을 번역한 등가어이다. 흔히 우리가 악마라고 번역하는데, 원래 의미는 모략자이다. 이 유혹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할 때 받게 되는데, 악마는 한 인간이지만 하느님을 따르는 구도자로, 아니 하느님처럼 살고자 하는 예수의 의지와 결심에 딴지를 걸고, 예수님에게 너는 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모략한다.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시는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유혹한 가시적인 주체는 디아볼로스이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심층적인 주체는 다름 아닌 프뉴마’, 성령인 것이다. 2007년 올 한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분명히 크고 작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 유혹의 주체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시험이다. 올림픽 출전 선수가 되기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에게 사탄을 통한 시험은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높이시려는 사랑의 표현이다. 올해에도 우리는 삶에서 마주칠 시험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도록 노력해야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