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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8)_ 예언자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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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1 22:58 조회1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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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


예언자와 예수님
배철현(교수 ∙ 서울대학교 ∙ 종교학과)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특징 중에 ‘예언자預言者’ 제도가 있다. 예언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그 ‘대언化言’에는 과거에 대한 꾸짖음도 있을 수 있고, 현재 사건에 대한 진단이 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전하는 예언이 있을 수도 있다.

‘예언자’라는 말은 히브리 단어 ‘나비’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의 어원이 히브리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 근처에 있는 ‘마리’라는 고대 도시의 기원전 15세기 문헌에 ‘나부’라는 용어(‘점쟁이’라는 뜻)가 등장한다.  예전에는 예언자 제도가 고대 이스라엘만의 제도라고 생각해 왔으나, 지금은 고고학적 발굴로 고대 근동에 이와 비슷한 제도가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나비’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1사무 9,9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 하느님께 문의하러 가는 사람은 “선견자에게 가 보자!”고 하였다. 오늘날의 예언자를 옛날에는 선견자라고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선견자’라는 단어는 히브리 단어 ‘로에’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보는 사람’, 영어로 ‘seer’이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이루기 전에는 이들을 ‘선견자’로 부르다가, 이스라엘이 나라를 건립하면서 명칭이 ‘나비’로 바뀐다. 그렇다면 ‘나비’의 원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단어를 분석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를 볼 수 있다. ‘나비’의 어근이 되는 n-b-는 ‘말하다’라는 뜻이다. ‘나비’는 이 어근의 과거 분사형으로 ‘말을 전달 받은 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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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비’는 원래 수동의 의미로 ‘말을 받는 사람’이다. 즉 히브리말 ‘나비’는 ‘하느님에게서 말씀을 받는 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받거나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천상 회의의 결정을 듣고, 마치 녹음기처럼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국가를 세우기 전에는 하느님과 직접 대화하였으나, 국가를 세운 후에는 지상의 임금을 견제하는 기구로 예언자 제도가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국가가 없어지면서 예언자 제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언자의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었다.

필리피의 카이사리아 지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다른 예언자들보다 높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당시 유명한 세례자 요한, 그리고 구약 시대 최고의 예언자인 엘리야로 생각하였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들보다도 높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마르 8,27-33 참조).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예언자로 받들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루카 24,19)로 예수님을 묘사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예수님을 확인해 주셨다고 서술한다(사도 2,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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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사볼도Girolamo Savoldo,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먹이를 중, 16세기.]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예언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마태 21,11) 군중은 그분을 예언자로 칭송했고, 병을 고치는 기적을 보고 예언자로 여겼다(루카 7,17; 요한 6,14; 9,17 참조). 그분의 반대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인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마태 21,46 참조). 유다인들은 진정한 예언자의 특징인 고귀한 지식이나 ‘특별한 눈’(마태 26,68; 루카 7,39; 22,64)이 예수님께 없다는 것을 밝혀내어 예수님이 예언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모두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이 들어 볼 수 없게 된 아히야는 예로 보암 임금의 아내가 미래를 말해 달라고 찾아왔을 때, 그 여자가 변장한 것을 알 수 있었다(1열왕 14,1-18).

예수님께서 처음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를 밝혀내시자, 그 여자는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하고 말씀하셨다.
17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19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요한 4,16-19).
또한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당신을 태우고 올리브 산으로 향할 어린 나귀가 있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당신을 예언자라고 부르신 적은 없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자기 이해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분께서는 예언자가 겪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실 때 당신을 예언자라고 지칭하셨다(마르 6,4과 병행 구절들; 루카 13,33 참조). 그분께서 당신의 고향 나자렛을 꾸짖으셨을 때, 당신의 행동을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동에 다음과 같이 비교하셨다: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5-27).
엘리야와 엘리사는 유다교에서 최고의 기적을 행한 자로 존경받아 온 인물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을,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1열왕 17,17-24; 2열왕 4,18-38) 소량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인 사건(2열왕 4,42-44)과 병행시키신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예언자로 여기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적 인물인 세례자 요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요한도 예언자란 칭호를 받았지만(마태 11,7-9; 14,5; 21,26; 루카 7,25-26), 모든 복음서는 그가 마지막 심판자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이라는 큰 인물의 도래를 위해 길을 예비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하느님께서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말씀하신다는 신명기 구절(신명 18,17-19)에서 기인한 것 같다. 베드로는 성전 구내의 솔로몬 주랑에서 군중에게 이 구절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을 지칭하였다(사도 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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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 세례자 성 요한. 1485-1490,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유다인들의 왕’으로 오인받아 죽게 된 사건은 구약 시대부터 내려오던 ‘거짓 예언자’에 대한 유다인의 반감과 연관이 있다. 유다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군중을 타락시키고 혼미하게 하는 ‘거짓 예언자’로 여겼다는 증거가 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사람들에게 ‘소란을 일으키게 하고’, ‘선동하는 자’로(루카 23,2.5.14),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마태 27,62-64)로 정죄당한다. 요한 복음서에도 비슷한 죄과가 예수님께 부과되었다(요한 7,12.47). 성경에 기록된 유다교 율법에 따르면, 국가를 거부하라고 유인하는 예언자들을 하느님께 정식으로 기소할 수 있었다(신명 13,1-5; 18,20).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혼미하게 만드는 거짓 메시아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셨다(마태 24,24; 마르 13,22). 그 당시에 그런 사람들에 대한 우려가 분명히 널리 퍼져 있었다. 사실 1세기 초 팔레스티나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등장했다. 그들은 팔레스티 나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들이었다. 유다 학자 요세푸스는 스스로 ‘예언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을 주도하고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예언자’라고 내세웠을 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유다 나라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요세푸스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허풍쟁이’라고 부르면서, 특히 신약성경에도 언급된 두 명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 44-46년 사이에 활동한 테우다스(사도 5,36)와 51-60년 사이에 활동한 ‘이집트 사람’인데, 바오로는 그 이집트 사람으로 오인받은 적이 있었다(사도 21,38).

많은 사람이 이 두 사람을 지지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유다 학자들은 예수님을 법과 질서를 해치는 또 다른 골치 아픈 예언자로 보았기 때문에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제들과 사두가이, 바리사이는 로마 정부와 함께 반란이 가져올 국가 재난을 피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실제로 66년에 유다 독립항쟁이 일어났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7년 5월 374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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