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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_알파벳과 성경(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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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2 15:31 조회1,4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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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


알파벳과 성경

배철현(교수 ∙ 서울대학교 ∙ 종교학과)

 

 

만일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기원전 14세기,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을 때 그 문자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또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군중을 두고 예수가 땅바닥에 낙서한 문자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인간은 언제부터 문자를 만들었을까?

 

문자는 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문자가 역사를 가능하게 했고, 하느님께서 문자를 사용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 사람들의 유배기 이후,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과 무너진 다윗 왕가를 대신할 책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한 성경은 바로 ‘문자’라는 매개체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원전 17세기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석비에 새겨진 고대 문자는 대화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석비에서 함무라비는 ‘나는 위대한 왕, 바빌로니아의 왕, 아무르 땅 전체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 사방 의 왕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다. 수메르 ∙ 아시리아 ∙ 바빌로니아의 쐐기 문자, 이집트의 성각 문자, 중남미의 마야 상형 문자는 대부분 궁궐이나 신전 벽에 새겨져 있어 사람들에게 누가 왕인지, 왕이 이룩한 전쟁 승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광고이다.

 

그러나 문자가 만들어진 가장 근본 이유상거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000년대 메소포타미아 경제는 상당히 발전하여, 당사자 간의 계약을 믿을 만하고 영구히 남기기 위한 도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또 도시가 생겨나고 중앙집권적 경제가 발전하면서 왕국이나 신전 서기관들이 신전에 딸린 저장 창고에 드나드는 곡식의 수량과 양과 염소의 수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3300년 메소포타미아 남부 도시 우룩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문자는 후에 등장하는 이집트어 ∙ 중국어 ∙ 마야어 등과 마찬가지로 그림 문자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신神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 도시 우룩(성경의 에렉)에서 그림 문자로 처음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명석한 행정가들이나 상인들이 집단적으로 연구하여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자는 한순간의 계시라기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기호가 진화한 결과다.

 

아르메니아에서 발원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되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오랜 기간 동안 침적토를 쌓았다. 그 위에 형성된 수메르에서는, 굳지 않은 점토판에 뾰족하게 자른 갈대 줄기 끝으로 그 위를 눌러 그림 글자를 그렸다. 이 토판 문서는 햇볕에 자연스럽게 구워져 반영구적인 기록이 되었다.

 

그림 문자는 한정된 지역에서 사용되었고, 현대와 같은 문자는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문자 체계는 기원전 2600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표현 대상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사랑’이나 ‘희망’이란 단어를 그림 문자 체계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 낱말을 표현하기 위해 ‘사’와 ‘랑’이라는 음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고안하여 ‘사랑’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그림 문자는 그 자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단순히 음가音價만 제공해 주는 음절로 변했다.

 

기원전 1800년경부터 이전의 음절 문자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알파벳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05년 중동 지방 시나이 반도에 있는 세라비트 엘-카뎀이란 도시에서 조그만 스핑크스가 발견되었다. 이곳은 기원전 2000년대 이집트인들이 셈족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하토르 여신을 위한 신전을 짓고 터키석을 발굴하던 광산이었다. 이 곳에서 스핑크스를 발견한 영국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 경은 이 스핑크스에 쓰인 비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스핑크스 한쪽에는 이집트 성각 문자로 터키석의 여주인인 ‘하토르 여신의 사랑 받는 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한편에 쓰인 처음 보는 이상한 문자였다. 페트리는 이 문자를 알파벳이라고 보고, 현대 히브리어나 아랍어가 속한 셈족어라고 추정했다.

 

10년 후,이집트 학자 알란 가디너 경은 이 새로운 문자를 ‘원-시나이어’라 하고, 이 문자와 이집트에 있는 몇몇 성각 문자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가디너는 이 지역에서 셈족인들이 노예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림을 셈족어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는 셈족어로 지팡이 모양의 그림을 ‘라메드’, 집 모양의 그림을 ‘베이트’라고 읽었다. 그래서 가디너는 이런 법칙을 바탕으로 스핑크스에 있는 그림을 셈족어로 다음과 같이 판독했다:

 

lamed(지팡이) - beit(집) - ‘ayin(눈) - lamed(지팡이) - taw(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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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문장 전체를 음절로 읽어 ‘라메드-베 이트-아인-라메드-타우’라고 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디너는 그림 글자를 그려 놓고 그 그림에 대한 셈족어 발음의 첫 자음을 그 글자의 발음으로 읽었다. 이 체계가 바로 알파벳이다.

 

이 문장을 두음법칙을 이용하여 읽으면 ‘르-바알라트, 곧 ‘여신을 위하여’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여신은 바로 하토르 여신이다. 히브리어나 다른 셈어는 모음을 표시하지 않는다. 문장을 읽고자 한다면 그 언어를 익혀 모음을 추측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스핑크스에 쓰여 있는 문장은 같은 내용을 하나는 이집트어로, 하나는 알파벳인 셈족어로 쓴 것이다. 학자들은 이 원-셈어로 쓰인 모세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아마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사용되었던 문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원­셈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가디너가 1916년에 판독한 원-시나이어는 우리가 아는 알파벳의 모양을 갖춘 페니키아어 알파벳과 차이가 많다. 당시 시나이 반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 레바논 등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오히려 원-시나이어보다 연대가 앞선 알파벳 형식의 문자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알파벳 문자를 발명한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이라는데 동의한다. 이 당시 가나안 지방은 이집트 ∙ 히타이트 ∙ 바빌로니아 ∙ 크레타로 가려는 상인들이 모이는 길목이었다. 서로 다른 문자를 사용했던 이들은 통교하기에 가장 간편하고 과학적이며 배우기 쉬운 문자 체계를 고안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파벳이다. 알파벳이란 문자 체계의 첫 두 글자의 그리스어식 이름 ‘알파(소)’와 ‘벳(집)’의 결합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우리가 아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라틴 알파벳 그리고 모든 유럽 언어의 알파벳과 영어 알파벳 모양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000년부터 알파벳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폭넓은 무역을 통해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로 전파시켰다. ‘페니키아’라는 단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분홍색 염료 장사’라는 의미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이 알파벳을 ‘포이니케이아 그람마타’, 곧 ‘페니키아 알파벳’이라 불렀다. 헤로도투스의<역사>에 의하면 카드모스라는 사람이 이 알파벳을 전해 주었다고 증언한다. 페니키아 선생 발 앞에 앉은 그리스인이 페니키아 문자와 발음을 따라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문자의 발명이 인류를 역사 이전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인도했다면 알파벳의 발명은 권력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시대에서 이론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읽고 쓸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았다. 더구나 이 알파벳이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복음의 도구가 된 것하느님의 섭리인 것 같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 신앙을 고백하는 알파벳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였고, 이 알파벳을 받아들인 그리스-로마인들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문헌인 신약성경을 적은 그리스어와 교부들의 문헌을 적은 라틴어가 되었다. 예수가 간음하다 잡힌 여인 앞에서 쓴 글자는 아마도 알파벳으로 쓰인 아람어 글자였을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달린 팻말은 라틴어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쓰였다(요한 19,20). 성경이 바로 이 알파벳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성경이 기록되어 누구나 하느님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7년 9월 378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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