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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_새롭게 기록되는 성경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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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2 15:35 조회1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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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


새롭게 기록되는 성경⑴

배철현(교수 ∙ 서울대학교 ∙ 종교학과)

 

 

성경은 유다교를 신봉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이자 서양 문명의 기초를 놓은 책이다. 성경은 서양인들의 종교사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단의식 형성과 문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상 수많은 경전이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종교가 간직했던 수많은 ‘거룩한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은 이슬람교도의 ‘쿠란’과 함께 ‘거룩한 책들’이 아니라 한 권의 유일무이한 ‘그 책’,복수가 아닌 단수 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성경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된 개념이 배어 있다. 성경은 유다인들이나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말의 주체가 분명히 하느님이지만, 하느님께서 성경의 모든 구절을 성경 기자들에게 일러 주고 베끼라고 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성경 기자들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정황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것에 관해 고백한 글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을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윤곽’을 주관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기자 자신의 삶의 정황에서 고백한 하느님은 성경 안에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보름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성경의 내용이 하느님에 관한 것이지만, 성경이 곧 하느님은 아니다.

 

이러한 성경이 지금처럼 처음부터 한 권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성경을 뜻하는 영어 단어 ‘Bible’은 프랑스어 ‘bible’에서 왔고, ‘bible’은 단지 ‘그 책’을 의미하는 중세 라틴어 여성 단수 명사 ‘biblia’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고전 라틴어에서는 ‘biblia’가 여성 단수 명사가 아니라, 고전 그리스어 ‘ta biblia(그 책들)’처럼 중성 명사 복수였다. 이처럼 성경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Bible’은 원래 여러 책의 모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Bible’의 의미가 이처럼 ‘그 책들’에서 ‘그 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성경은 ‘태초부터’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명칭의 변화는 외형상 ‘책’의 출현과 일치한다. 코덱스(codex), 즉 한 권으로 묶인 책이 발명되기 전, 성경의 책들은 낱개의 두루마리로 존재하여 나무 상자나 벽장 안에 보관되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어떤 두루마리가 ‘정경’이 되느냐는 유다인들이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후에 교리 논쟁의 주제가 된 두루마리 성경들의 순서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루마리가 책의 형태를 취하게 되자 사용하기도 간편하고 보관하기도 쉽게 되었다.

 

그러자 책의 순서와 어떤 두루마리를 코덱스 안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성경이 특정한 순서로 배열되기 시작하였고, 구약성경(또는 유다인의 히브리 성경)과 신약성경이 정경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이전에 여러 두루마리로 각각 존재하였던 ‘그 책들’이 한 권의 ‘그 책’으로 변한 것이다. 그 후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코덱스를 만드는 과정에 박차가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개개의 성경을 배열하는 순서가 다른 성경책이 생겼다. 구약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과정은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시작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신약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고 가장 먼저 시도한 이는 2세기 이단자로 알려진 마르키온(Marcion: 154년에 죽음)이었다. 우리가 그를 이단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당시 교회 정치 싸움에서 밀렸고 그의 신약성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키온의 신약성경은 복음서 가운데 루카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 몇 개로만 꾸며져 있었다. 마르키온은 구약성경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당시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네오(Irenaeus, 115-202)는 스스로 정경 목록을 발표하면서 이를 유일하고 전통적이며 불변한 성경 목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목록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였는데, 성경책의 ‘정경화’는 가속화되었다. 

 

니케아 종교 회의(324/5년)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함으로써 새로 등장한 그리스도교 국가를 효과 있게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성경은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 첫 장부터 신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는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을 누가 썼느냐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말엽 신학자들 사이에서 개진된 성경비평학에서 비롯되었다. 성경비평학은 성경을 분석하여 그 기원, 전승 과정, 해석 등을 연구한다. ‘비평’은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의미로 객관적 분석과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하는 학문적 도구이다. 성경비평학은 고대와 중세 시대,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현대적 의미의 비평은 18세기 말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발굴하기 시작하고, 그 곳에서 나온 상형 문자와 쐐기 문자를 판독하면서, 이전에 주로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비평에서 벗어나 고고학, 문헌학, 비교문학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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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알렘포 코덱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

 

성경은 하느님에게서 직접 계시와 영감을 받은 신 ∙ 구약의 위대한 인물, 예를 들면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사도 요한과 바오로 등이 직접 쓴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당시부터 학자들은 성경을 과학의 방법으로, 특히 고대 근동에서 출토된 유물과 자료를 이용하여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고고학과 고전 문헌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당대의 문화와 역사에 비추어 연구하고 성경 본문을 고대 근동의 문헌들과 비교함으로써, 성경의 다양한 문학 양식과 성경 저자들의 편집 작업을 밝혀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성경 본문의 상당 부분이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기보다 성경 기자들의 문학적 소양과 신학적 성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학자들은 성경의 집필 시기, 그 자료의 기원과 전달 과정, 성경 각 권의 실제 저자들의 신원, 그들의 집필 동기와 신학적 의도, 그들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등, 성경을 탄생시킨 역사 ∙ 사회 ∙ 종교적 배경과 성경의 문학적 ∙ 신학적 내용에 관한 연구로 지평을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성경의 배경과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성경 본문을 읽는 행위‘비판적 성경 읽기’라고 한다. ‘비판적 성경 읽기’의 목적성경을 파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을 깊이 읽어 성경 원저자의 의도와 그의 신앙관을 드러내는 데 있다. 또한 이런 ‘상식으로 성경 읽기’는 성경을 몰상식하게 읽어 축자영감설에 빠지는 광신적 ‘근본주의’나, 율법의 근본 취지보다 시행 세칙에 매달리는 ‘율법주의’의 오류에서 우리를 건져 낸다.

 

성경은 ‘번역된 책’이다

성경은 이슬람의 쿠란과는 달리 항상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왔다. 또한 같은 언어권에서도, 심지어는 같은 언어에서도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있다. 성경이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시공간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읽는 사람들의 언어로 항상 번역되었다. 이와 달리 이슬람의 경우에는 고전 아랍어 쿠란이 모든 곳에서 유일하게 공식 경전으로 사용된다.

 

성경이 처음 기록될 당시, 적어도 성경의 3/4 이상은 이미 사어死語가 된 고전어로 쓰였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입으로 유다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다.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땅으로 흩어지자 불과 몇 세대 만에 히브리어가 그들의 일상 용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상권을 장악한 아람인들은 서서히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뻗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렇다 할 강대국이 없었던 그 시기에 아람인들은 무역 활동을 활발히 하며 고대 근동 전체를 아람어권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아람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은 이러한 근동 지방의 아람화에 촉매 구실을 하였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기원전 539-333)가 끝나기도 전에 아람어는 유다인들의 언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들, 곧 인도에서 그리스, 박트리아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외교 언어가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아람어는 현재의 영어처럼 당시 국제 공용어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궁중 외교언어였다.

 

히브리어가 더 이상 일상 언어로 쓰이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의 경전 전통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에즈라서와 다니엘서의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된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겼다. 성경의 본질이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에게 쉽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면, 성경 번역은 그 시대의 요구이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이 기록되는 바빌론 유배기 이후에는 아람어가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쓸 때 사용한 언어는 성경 히브리어였기 때문이다. 성경 히브리어도 기원전 1200년경 초기 히브리어의 형태를 보여 주는 ‘미리암의 노래’(탈출 15장 참조)부터 기원전 2세기경에 쓰인 다니엘서에 이르기까지 무려 천여 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포함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수와 제자들의 언어는 분명히 셈족어인 아람어였지만, 신약성경은 인도-유럽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였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통해 다시 기록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경험과 언어에 담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미천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구약성경이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고 신약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 언어들이 다른 언어들보다 영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성경이 과거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하느님을 체험한 삶을 기록해야 한다. 과거 구약성경의 족장들, 대예언자들, 서기관들, 신약 시대 예수의 제자들과 바오로,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삶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이제 우리의 삶이 성경에 다시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삶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그 문제는 다음 호에서 계속 논의하고자 한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7년 11월 380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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