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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_새롭게 기록되는 성경⑵(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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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12 15:38 조회4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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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언어와 성경(마지막회)


새롭게 기록되는 성경⑵

배철현(교수 ∙ 서울대학교 ∙ 종교학과)

 

바빌로니아 유배와 토라

유다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빌로니아 유배라는 비극적 사건을 알아야 한다. 예언서와 신명기에 나타나는 역사관은, 유배 생활을 통하여 토라를 잘 알고 지켜야 유다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물론 모세 시대나 왕정 시대에도 토라를 중요시하였다. 토라는 이스라엘 민족 생존의 한 부분이자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야 할 삶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예루살렘의 희생 제사 의식이었다. 광야의 계약 궤에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기까지는 제사 의식이 너무 강조 된 나머지 토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바빌로니아 유배로 희생 제사를 바칠 수 없게 되자, 하느님과 통교할 아무런 대안도 없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라는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고 한 민족으로 결합시켜 주는 구심점이 되었다. 토라 또는 성경이야말로 예루살렘의 제사를 대신하고 다윗 가문의 메시아 기대를 북돋워주는 유일한 자구책이었다. 그리하여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 무너진 다윗 왕가의 역할을 토라 연구가 대신하게 되었다. 경전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히브리어 성경을 당시 유다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이런 번역과 경전을 해석할 장소, 곧 회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토라는 바빌로니아 유배 때 유다교 회당이 생겨나면서 그들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성전이 재건된 제2성전 시대에도 제사 의식과 더불어 그들의 신앙과 민족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기둥이 되었다. 이때에는 누구도 토라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었다. 에즈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에게 토라의 가치를 더욱 드높였다. 그 결과 토라는 유다인들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토라는 유다교 예배 의식의 핵심이며, 토라를 낭독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공공장소에서 토라를 읽는 것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성경 기록은 신명 31,10-13이다. 두 번째 기록은 에즈라가 토라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읽어 주는 구절(느헤 8,1-8)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정규적으로 토라를 읽는 예배 의식을 모세는 안식일과 축일과 초하룻날에, 에즈라는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그리고 안식일 오후에 하라고 지시하였다.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로니아에서 유배 생활(기원전 587-538)을 하기 전에도 아람어는 널리 사용되었다. 신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아람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였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전역의 외교 ∙ 경제 문서에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그 당시 유다인 가운데 지식인은 주변 국가와의 외교와 경제 활동을 위하여 아람어를 배웠을 것이다. 유다 임금 히즈키야 시절(기원전 716-687)에 유다인들 대부분이 히브리어를 사용하였지만, 일부 엘리트 계층은 당시 근동의 국제 공용어인 아람어를 이해했다고 전한다. “엘야킴과 세브나와 요아가 랍사케에게 말하였다. ‘저희가 아람 말을 알아들으니, 제발 이 종들에게 아람 말로 말씀해 주십시오. 성벽 위에 있는 백성이 듣고 있으니, 저희에게 유다 말로는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이사 36,11).

 

그러나 얼마 뒤 아람어와 히브리어의 사용 비율이 바뀌었다. 바빌로니아에 유배 중인 유다인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몇 세대 지나지 않아 그들의 일상어는 아람어로 바뀌었다. 타르굼(Targum) 번역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직접 증거는 없지만, 아마 히브리어 성경을 그들의 말로 대치하려는 시도는 있었을 것이다. 탈무드는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유배 장소로 택하신 이유를 히브리어와 당시 바빌론에서 사용되던 아람어가 친족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더욱이 기원 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면서, 아람어는 공식적인 국제 공용어(lingua franca)가 되어 이집트에서 발트 해 연안까지, 그리스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이제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가 없어질 위험에 처했다고 기록한다. “그때에 나는 또 아스돗, 암몬, 모압 여자들과 혼인한 유다인들을 보았다. 그 자녀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을 하는데, 유다 말은 할 줄도 모르는 채 이 민족 저 민족 말을 하였다”(느헤 13,23-24).

 

고전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유다교 조차 성경을 당시 언어인 아람어로 재해석하게 되었다. 당시 쓰이던 미쉬나 히브리어나 쿰란에서 발견된 히브리어는 고전 히브리어와 매우 달랐다. 따라서 유다교 회당에서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고전 히브리어 구절을 단순히 아람어로 번역 ∙ 통역하는 것만으로 는 성경을 이해하기가 충분치 않았다. 이제 성경은 ‘해석’ 또는 ‘설명’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히 아람어 성경 타르굼을 기록하였다. 타르굼은 성경 본문에 전통 있는 해석을 제공하여 당시 유다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의 생활에서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주석서였다.

 

타르굼, 성경 토착화의 한 본보기

타르굼은 히브리어 성경을 단순히 일상 통용어인 아람어로 바꾼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타르굼은 성경 본문을 번역하는 것 이외에 주석을 달거나 히브리어 원전에 해석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타르굼의 역할은 히브리어 원문을 보존하면서 여러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해석을 제공하였다. 타르굼은 각 지방의 아람어 방언으로 쓰였기 때문에 성경 해석상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기원후 7세기 이후 아람어가 아랍어로 대치되었을 때에도 타르굼은 계속 사용되었다.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잃은 유다인들이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을 아람어로 과감하게 번역한 과정은 바로 ‘토착화’에 해당한다. 타르굼은 유다인들이 성경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토착화 작업이었다. 타르굼이 경전으로 자리매김되어, 정통주의 유다인들에게 제2의 토라가 되었다. 그러면 한국인들에게 성경은 어떻게 토착화 되어야 하는가? 히브리인의 토착화 작업은 우리에게 어떤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가?

 

성경 연구의 목적성경 본문의 뜻과 메시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에 연결시켜 실천하는 데 있다. 그 목적을 이루려면 먼저 본문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과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 본문을 본뜻과 달리, 또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경은 맹신을 강요하는 광신주의나 맹종을 강요하는 교조주의의 시녀가 아니다. 먼저 성경 본문을 실제의 글자나 어구가 뜻하는 그대로 알아들어야 한다. 이른바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글자 하나하나를 역사 ∙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축자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성경 저자가 본문을 기록할 때 거기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깨닫는 노력이다.

 

성경 토착화의 한 패러다임

성경의 형성 과정과 그 성경이 각 문화에서 특히, 히브리 성경을 2세기에 아람어 성경으로 번역했던 타르굼 아람어 성경의 형성과 토착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A(구약 시대의 삶의 정황) : B(구약성경)

= A1(기원후 1-2세기 팔레스티나 유다인) : B1([타르굼 아람어 성경])

구약 시대의 삶의 정황(A)을 통하여 구약성경(B)이 쓰였다. B를 해석하려면 먼저 A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A와 묘의 해석의 역동적 관계가 디아스포라라는 삶의 정황(A1)을 통해 [타르굼](B1)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우선 A1을 이해하기 위해서 변화된 역사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B를 B1으로 번역할 때 원래 B의 의미가 B1으로 유사하게 해석되었는지, 그렇게 해석 된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야 한다.

 

A1에서는 역사 상황이 바뀜으로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근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유다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고집하지 않고, 당시 고대 근동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성경을 배우고 자기들의 자녀에게 가르치는 혁신적 방법을 사용했다. 기원전 2세기에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에 의해 유다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있을 때, 과감히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칠십인역>이라는 성경을 남겼듯이, 민족이 와해되고 종교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성전이 파괴되자, [타르굼]기자는 다시 [타르굼] 번역을 통하여 야훼 신앙의 부활을 꾀하고, 당시 유다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아람어로 토착화 작업을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성경이 수천 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도 많은 신앙인과 지식인에게 삶을 깊이 관찰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성경은 닫힌 책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변화해야만 하는 ‘열린 책’이기 때문이다.

 

위 패러다임을 21세기 한국인들의 삶의 정황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시도해야 할 성경 연구의 도식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A(구약 시대의 삶의 정황) : B(구약성경)

= A2(21 세기 한국인들의 삶의 정황) : B2(한국어 구약성경)

A2와 B2에서 중요한 해석의 틀은 A와 B의 이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다. A는 곧 고대 근동이다. 고대 근동이라는 큰 틀에서 성경이 태동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성경 해석은 대부분 A를 정확히 읽어 내는 과정을 무시하고 A와 B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서양인들의 성경 해석을 우리의 성경 이해의 기초로 삼아 왔다. 우리 주위에 있는 서양인들의 성경 주석서들은 A와 B의 관계 모색을 통한 이해를 그들의 삶의 정황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런 서양인들의 해석이 바로 초대 유다인들의 칠십인역이며, 초대-중세 교부들의 성경 주석이었고, 근대 개신교 학자들의 성경 읽기였다. 그러나 이들의 신학적 안목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들의 해석이 A와 B를 대치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신학이 그들의 성경 해석과 신학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아, 하느님께서 주신 성경을 21세기 한국인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7년 12월 381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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