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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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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날개없는천사 작성일19-12-03 00:28 조회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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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28. 히라도. 나가사키. 일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스페인 바스크 출생(1506-1552)으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와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였다. 주로 인도와 일본에서 선교했는데... 그래서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도 불리고, 사도 바오로만큼 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아주 먼 인도를 비롯해서 동양지역 선교를 위해 전 삶을 바쳤다. 성인은 3년간 일본에서 선교하다가, 중국선교를 위해 떠났는데, 중국 땅에는 오르지 못하고 광둥성 앞바다 산첸섬에서 1552년 열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1662년에 성 이냐시오와 함께 시성되었으며, 소화 데레사 성녀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다.

 

언젠가 말레이시아 말라카 여행을 갔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그곳에서도 폐허가 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기념 성당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성인은 ​말라카에서 한 일본인을 만난 계기로 1549년 일본에 도착하여 선교하였다. 그때 일본의 영주는 성인이 인도에서 온 것을 알고, 그가 선교하려는 종교가 불교의 한 종파로 알고 빈 절을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히라도에 가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절과 성당을 한 풍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우리나라 천주교 전래는 1784년 북경에서 이승훈 베드로 세례가 계기로 시작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이미 일본은 천주교 신자가 30만 명 정도였고, ​(성인이 선교한 숫자는 10만 명 정도) 일본장군 소서행장 부대는 천주교 신자로 구성되었고, 포르투갈의 세르페데스 신부도 조선 땅에 함께 왔다고 한다.​ 일본 포로로 끌려간 5만여 명 조선인들 중엔 일본 땅에서 많은 수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니 역사적 기록보다 200년 앞서서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도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많은 신자가 화형으로 순교를 했고, 이들 중 26명이 성인품에 오르고, ​393명이 복자품에 오르는데(1867년, 2008년 두 차례), 그중엔 조선인 카이요, 빈첸시오 권(조선인 예수회 수사로 첫번째, 두번째)이 있다. 비록 박해를 받기는 했지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께서 선교한 것에 기원이 된것이다.

 

1931년 히라도섬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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