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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상신부】2019년 5월 18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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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5-18 13:52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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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상 신부] 

80년,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사람들이 애 취급하였지만 내 편에서는 세상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나는 이미 알아버렸다고 스스로 여길 때였다. 하지만 80년은 세상을 다 알아버린 아이에게도 조금 어려운 한 해로 기억된다. 통금이 떨어졌고, 나다니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수런거리는 소리, 밤이면 다급하게 울리던 호루라기 소리, 아버지의 이른 귀가. 

알 수 없는 것 중에 백미는 중학교 내내 학교 앞에 붙어 있던 불법무기 자진 반납기간이란 플랭카드였다. 곳곳에 걸린 이 플랭카드 곁을 지나며 우리는 도대체 누가 집에 무기를 가지고 있는거냐며 서로 물었다. 선생님께 이 플랭카드의 정체를 물은 놈도 있었던 것 같은데, 대답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말을 흐리는 선생님께 계속해서 물었던 놈 중에 한 친구는 흠씬 두들겨 맞았던 것도 같다. 그는 그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데 신경쓰는 놈이 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집에 있는 부엌칼 중에 큰 거는 무기 아니냐고 우기는 놈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걸 파출소에 가져다 줄 간 큰 놈도 없었다. 법보다 엄마가 더 무서운 애들이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불법무기 자진 반납 플랭카드는 그냥 그렇게 의미없이 붙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난 그 무기란 것이 광주에서 죽은 자들, 그 곁에 있던 이들이 '언젠가'를 기다리며 간진한 한이며 서러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또 다시 광주의 그날들. 믿어왔던 공권력에 의해 토끼처럼 죽임을 당하던 이들이 간직해야 했던 무기가 이제는 필요치 않게 된 건가? 죽을 짓 했으니까 죽었다거나, 세상이란 늘 그렇게 희생자들이 있는 법이라며 뒷짐 지고 에헴하는 이들이 있는 걸보면, 그 불쌍한 이들의 집에 아직 불법무기가 무명에 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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