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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탐구 사도행전(10-1): 사도 바오로, 두 번째 선교 여정에 오르다(사도 15,36-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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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도비꼬 작성일18-08-03 13:37 조회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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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탐구 사도행전(10-1) - 이용결 루카

 

 

사도 바오로, 두 번째 선교 여정에 오르다(사도 15,36-18,22)

 

 

여러분과 더불어 말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웠고  

그때부터 주님 께서 나를 의총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여 러분 안에는 신앙과 사랑이 쌓여 있습니다.
내가 이미 받은 것을 한 몫이라도 여러분과 같은 훌륭한 영혼들에게
전해 준다면 … 이 짧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바르나바가 쓴 것으로 보는 편지에서) 

 


1.분열의 아픔을 안고 선교에 나서다(15,36-41)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잘 마무리되자,바오로는 첫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 공동체를 다시 찾아가 튼튼히 하자고 바르나바에게 제안한다(15,36). 50년쯤인데, 새로운 선교지로 떠날 생각은 아직 누구도 하지 않았다.  


뜻은 좋은데 바르나바가 요한 마르코도 데려가자고 나서면서 일이 뒤틀린다. 본문에 나오지 않는 그의 의도는 무엇이 었을까? 
  ① 마르코가 ‘사촌’ 이라서?(콜로 4,10 참조) 
  ② 마르코의 어머니가 사도 베드로의 후원자라서?(12,12 참조) 
  ③ 바오로에게 그렇게 하였듯, 한 번 실패한 마르코를 격려하고 양성하기 위하여 다시 기회를 주려고?(11,24-26 참조)

 

바오로는 이 제의를 거부한다. 지난 선교 여행 초반에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마르코는 선교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선교 여정에서 스스로 이탈했고, 선교 체험이 부족하므로 증인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에서 나왔다기보다 나름대로 식별한 결과이다.  


아무튼 둘의 감정은 격해졌고 그 결과 헤어졌다(15,39 참조). 독자는 당황스럽다. 성령으로 충만한 환상의 선교 복식조인 두 사도가 자기주장만 고집하다가 감정에 휩싸여 헤어졌단 말인가? 우리의 약함을 보여 주는 예인가? 선교 원칙을 강조한 예인가? 갈등을 통해 두 팀으로 선교하게 이끄는 주님의 섭리인가? 중대한 사안을 두고 가까운 사람끼리 의견이 갈 릴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바르나바와 마르코 는 첫 선교 여행지였던 키프로스로  떠나면서 자취를 감춘다.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예언자인 실라스를 새 협력자로 택한 뒤,예정과 다르게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교회들을 굳건하게 만들었다(15,41 참조). 선교 실습이었을까?

 

 

2.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를 만나 함께 가다(16,1-5)
바오로는 첫 여행 때 교회를 세웠던 데르베와 리스트라에 이르렸다. 그는 여기서 선교 활동에 참으로 중요한 동반자요 제자인 티모테오를 만난다. 그는 첫 선교 여행 때 신자가 된(14,6-18 참조) 유다인 어머니(에우니케: 2티모 1,5)와 그리스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모계에 따르면’ 유다인이지만, 그렇게 간주되지 않은 듯하다.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데려 가고 싶어 했다. 그는 믿음과 평판이 좋았기 때문이다(16,2 참조). 그래서 그를 데려다 할례를 베풀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할례를 받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사도 회의의 결정 사항과 어긋난다. 바오로는 이 사항을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 견지한 원칙이지만,동시에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16,3) 내린 결정이었다. “유다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1 코린 9,20) 던 더 중요한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오로 일행은 아마도 갈라티아에 있는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16,4) 사도 회의의 결정 사항을 알려 지키게 하였다. 그럴 때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다인 그리스도인이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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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교의 방향은 성령께서 정하신다(16,6-10)
바오로 일행은 아나톨리아의 동남부를 떠나 서쪽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 하였다. 그런데 ‘성령’ 께서 그 일을 막으셨다. 일행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바오로 일행은 미시아에 이르러 북쪽의 비티니아 지방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 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영’ 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영으로 사도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11,15-16 참조). 남쪽과 북쪽으로 갈 수 없게 된 일행은 곧장 앞으로 나아가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바오로는 사람 하나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16,9) 도와 달라고 청하는 환시를 체험한다. 이 환시를 ‘우리’가 공동으로 식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16,10)한다. 여기서부터 주어가 ‘우리’로 바뀌는데, 그것이 글쓴이의 직접 체험을 반영한 표현인지, 바오로 일행의 체험기를 참고하여 쓴 표현인지, 글맛을 한층 생생하게 살리려는 문학 장치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무성하다. 

영이 두 차례 개입하고 환시가 한 차례 행해지면서 바오로의 본래 계획(15,36 참조)은 무너졌다. 주님의 일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성령이시다. 돌아가는 사태에 유의하여 그분의 뜻을 식별하고 순종하는 것이 신앙 여정이다. 이는 또 그분이 이끄시는 새로운 지역(유럽)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여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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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럽의 첫 선교지,필리피(16,11-15)
바오로 일행은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 땅으로 건너간다. 그들이 처음 간 필리피는 로마 시와 똑같은 면세 특권을 지닌 로마 식민시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세운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테살로니카)도 아니고 그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암피폴리스)도 아니건만 ‘첫째가는’ 도시라고 자부할 만큼 중요한 곳이다. 그러 나 그들이 회당을 찾지 못할 만큼 유다인의 수는 극히 적 었다.

만남 1 - 도시 밖, 여자
바오로 일행은 안식일에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유다인들은 회당이 아니면 정결례 때문에 강가에서 기도하곤 했다. 강기테스 강가에 "하느님을 섬기는”(16,14)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바오로가 말씀을 전하는데, 이방인 남자 코르넬리우스의 마음을 열어 주신 하느님께서 한 이방인 여성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16,14 참조). 

그는 리디아 지역의 티아티라 시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리디아의 해방 노예인 둣)였다. 매우 비싼 자색 옷감을 제조(?) 판매한 리디아는, 바오로 일행을 집에 머물게 할 정도로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다. 그는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즉시 바오로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서 환대 하여 믿음을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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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감옥에서 겪은 기적과 복음 선포(16,16-40)

만남 2 - 도시 안,여자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에서 두 번째로 부딪친 여자는 점 귀신 들린 하녀다. 그가 계속 쫓아다니자 바오로는 지겨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귀신을 쫓아낸다. 구마 기적이다. 예수님의 권위가 잡신들의 권위를 능가한다는 것이 이방 도시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귀신이 쫓겨나가 하녀가 점을 칠 수 없게 되자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된 주인들이 바오로 일행에게 거짓된 정치적 혐의를 씌워 고발한다(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을고발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심하게 맞고 가장 깊은 감방에 갇혔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 9,16).

만남 3 - 도시의 감옥 안, 남자
한밤중에 바오로와 실라스가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는데, 응답인 듯 큰 지진이 갑자기 일어난다.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책임 때문에 죽으려는 간수를 만류하고 믿음으로 이끈다. 즉시 간수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바오로 일행을 대접하며 기뻐한다(16,33-34 참조). 이 사례는 코르넬리우스, 리디아의 경우와 병행하고, 베드로와 바오로가 병행한다.

이튿날 석방 명령을 내리는 행정관들에게 바오로와 실라스는 자기들이 로마 시민권자라고 밝히고 주인들의 불법 행위를 고발한다. 왜 그들은 진작 밝히지 않았을까? 그들의 고난을 은총의 통로로 삼아 간수 집안을 구원으로 이끌려는 하느님의 뜻일까? 바오로 일행은 리디아의 집(가정교회)으로 가 형제들을 격려한 다음 필리피를 떠났다.
(다음 회에 계속)

-이용결(루카):

  <성서와함께> 편집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성서사도직을 지향하며 일하고 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11년 8월 425호.

<성서와함께> 홈페이지 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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