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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미드라쉬_‘빛이 있어라!’ 무슨 빛일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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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8-21 10:40 조회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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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미드라쉬

 

빛이 있어라!’ 무슨 빛일까?

조철수

 

 [1]

 ‘하느님께서 말혜셨다. "빛이 있어라!”’ (창세 1,3). 

 이츠학 랍비는 (아래 구절을) 열었습니다(아래 구절로 그의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열리어 빛을 비추고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 줍니다 (시편 119,130).

 

 예후다 랍비와 느헤미야 랍비 (는 의견이 달랐습니다.) 

 예후다 랍비는 말했습니다.

 ‘빛은 (창조) 시작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왕궁을 짓기를 원하는 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어두웠습니다. 그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는 등잔과 등불을 켜고 그 기반을 어떻게 세워야할지 알았습니다. 이처럼 빛은 (창조) 시작에 만들어졌습니다.”1)

 

 느헤미야 랍비는 말했습니다.

 “세상은 (창조) 시작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왕궁을 짓고 등잔과 등불로 장식한 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2)

 여기까지가 유단 랍비의 해석입니다.

 

1) 이 비유에서 왕궁은 세상을 뜻한다. 빛은 세상을 만들 기반이 세워 지기 이전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즉 빛은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다.

2) 창조 시작에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세상을 밝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빛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왕이 왕궁을 짓고 왕궁의 벽을 등잔과 등불로 장식했다는 비유에서 . 등잔과 등불은 상징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토라를 가리킨다. 서기 4-6세기경 이스라엘 땅(유대아지역)에 건립된 여러 회당의 바닥 모자이크에서 일곱 개 등잔을 세워놓는 등잔대(메노라)를 볼 수 있다. 메노라는 하느님께서 모세에 게 하느님을 위한 예물로 만들라고 하는 등잔대를 말한다(출애 25,31-40). 초기 유대교 회당 바닥의 메노라 장식은 석류와 무화과를 각각 엮은 나무줄기 모양의 둥잔대에 삼족三足의 받침대를 한 것이다. 이러한 메노라 그림의 석류는 이스라엘 사제들의 겉옷 복장 장식에도 나오듯이 (‘그 겉옷자락 둘레에 자색과 자홍과 다홍실로 석류들을 만들어 달고, 석류 사이에 돌아가며 금방울을 달아라출애 28.33)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화과는 에덴 동산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지식의 나무열매로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랍비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무화과로 이해하는데,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먹고 눈이 열리자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그들의 몸을 가렸다는 이야기에 근거 한다). 메노라 그림 왼쪽에 뿔나팔과 제기용 재받이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초막절에 사용되는 대추야자나무 가지 (룰라브)와 구연 열매 (에트로그)가 함께 나온다. 대추야자나무 가지와 구연 열매는 초막절의 상징물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40년 동안 장막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뿔나팔은 신년을 알리는 도구이며 재받이는 신년축제 다음 10일째에 거행되는 속죄일을 상징한다. 잿더미에 앉아 재를 뿌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2개의 메노라 사이에 있는 것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성전 입구나 지성소 입구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메노라 모자이크에서 볼 수 있듯이 메노라는 나무와 열매로 표현되어 생명의 나무로 인식되었으며, 메노라의 일곱 개 등잔불은 어둠을 밝히는 불빛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이처럼 메노라는 세상을 밝히는 빛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은 곧 하느님의 말씀인 토라를 뜻한다. 복음서에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그것을 됫박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습니다’(마태 5,14-15)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등불은 이러한 세상의 빛인 메노라를 가리키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해석)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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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_티베리아스, 5-6세기경 갈릴래아 지역에 건립되었던 회당의 바닥 모자이크.]

 

 핀하스 랍비와 시몬 랍비의 아들 예후다 랍비가 왔습니다. 후나 랍비는 이츠학 랍비의 들 쉬무엘 랍비의 이름으로 (아래 구절을) 열었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열리어 빛을 비추고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 줍니다’ (시편 119,130). “당신의 입이 열림으로 우리에게 빛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빛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3)

  

 [2]

 베레크야 랍비는 예후다 바르 시몬 랍비의 이름으로 (아래 구절을) 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만들어졌으며 그분 입의 바람()으로 모든 (천상의) 군대가 만들어졌다(시편 33,6).

 예후다 바르 시몬 랍비는 말했습니다.

 “찬미받으시는 거룩하신 분께서 노고나 수고로 그분의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이미 하늘이 만들어졌습니다.’4) 이처럼 빛이 있다 라고 쓰여 있지 않고 '빛이 있었다 (창세 1.3) 라고. 즉 이미 있었다는 뜻입니다.

 

3)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빛은 태양이나 달과 같은 빛물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 넷째 날에 태양과 달과 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 첫째 날에 만들어진 빛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랍비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랍비들은 그 빛이 창조 시작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요한 복음서의 시작 부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옛날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다.’ 여기에서 옛날(즉 창조)에 있었던 빛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세기 미드라쉬의 이 단락과 비교 하면, 그리스도는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4) 사람은 그 자신의 노고로 무엇인가를 만들지만 하느님은 말씀으로 만드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비교하여 복음서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예수님은 불구자나 환자들을 대부분 말씀으로 고치신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귀신들린 많은 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영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태 5,16). 이렇게 예수께서 말씀으로 무엇인가를 행하시는 것은 그분께 하느님의 권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고 이해된다.

 

 [3]

 심온 벤 요하이 랍비는 (아래 구절을) 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 입의 대답에 기쁨이 있으며 그때의 말이 얼마나 좋은가 (잠언 15,23).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다.’ 이것은 찬미 받으시는 거룩하신 분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은 전사戰士이시며5) 주님(YHWH)이 그분의 이름이다 (출애 15,3).

 ‘그 입의 대답(이것은)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어라!”’를 말합니다.

 ‘그 입의 대답이 얼마나 좋은가.’ (이것은)그리고 하느님께서 빛을 보시니 그것참 좋았다(창세 1.4)를 말합니다.

 

5) 잠언 15,23에 나오는 사람(이쉬)’이라는 단어가 어느 특정한 맥락에서 하느님을 뜻한다. 그 입증 문구로 주님은 전사글자 그대로, 전쟁의 사람이시다출애 15,3을 인용한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5년 7월 352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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