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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다-탈출기_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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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8-23 10:19 조회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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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다 - 탈출기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다
배미향 에밀리아

 

배미향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언어임을 체험하며 이를 나누고 싶어한다.  

미국의 어느 신학교 성당을 구경하는데
구약의 성막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천정은 꾸밈이 전혀 없는 단순한 사각형이는데
유독 타일 하나가 거꾸로 박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 성전을
인간이 아무리 잘 모방해도 결코 완전할 수 없기에,
건축가는 자신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스스로 인정하듯
마지막 타일을 일부러 거꾸로 박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형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물체를 모방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성막은 하늘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히브리서(8,1-5 참조)는 밝히고 있습니다.e0636cff23eebadbd9474d8b151b5d30_1534987


하느님께서는 광야에 머무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나이 산에서 맺은 당신과의 계약을 지키도록 ‘움직이는 시나이 산-성소’를 만들라고 일러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짓기 위한 예물을 스스로 봉헌하고,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수치대로 만든 모형 사진을 보면서 25-31장을 읽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성소의 성물을 순금으로 만들라고 이르십니다. 고대에 순금은 가장 귀한 금속으로 물건의 순수성과 귀함을 나타냈습니다. 계약 궤는 이동을 고려하여 거룩한 것에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고리에 채를 끼워 들도록 합니다. 계약 궤를 덮는 덮개는 ‘속죄판(카포렛kapporet)’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후대에 죄의 위험성과 위력을 막는 덮개로 이해하여 흔히 화해의 자리’, ‘자비의 옥좌’ 라고 옮겼습니다. 대사제는 온 국민이 죄를 벗는 속죄일에 희생 제물의 피를 속죄판 위에 뿌려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이루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금으로 커룹 둘을 만들라고 지시하시는데, 학자들은 결코 본 적이 없는 커룹의 어원을 아카드어 ‘쿠리부(kuribu)’와 연결 짓습 니다. 쿠리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전과 궁전 입구에 놓여 있던 인
간-동물-새의 복합 형상물로 인간과 신 사이를 중재하며 인간을 보호하는 영적 존재로 여겼습니다. 날개
를 가진 반인반수 모습의 커룹은 하느님의 옥좌를 나르고 그분의 현존을 표현하며 계약의 돌판을 지키는 천상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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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아시리아 시대의 반인반수 형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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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에서는 계약 궤가 가장 신성합니다. 계약 궤 자체가 하느님의 자리일 뿐 아니라 그 안에 하느님과의 계약 사항을 적은 증언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계약 궤는 하느님의 함께 계심,보호,속 죄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표시로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아가 다윗 임금은 이 궤를 새로 정복한 예루살렘으로 옮겨, 하느님께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공인하셨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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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폿은 하느님께 경신례를 드릴 때와 신탁을 받을 때 사제가 입는 특별한 옷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마노 보석 두 개를 에풋 양쪽 멜빵에 달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경신례를 행한다는 뜻을 드러냈습니다. 가슴받이에도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 열두 개를 박아 사제의 대표성을 드러내고,하느님에게 이스라엘을 상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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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8"이렇게 그 숫양을 송두리째 제단 위에서 살라 연기로 바쳐라. 20그런 다음, 그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얼마쯤 받아서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 그들의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을 돌면서 거기에 뿌려라.”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대사제의 직무가 중요하기에, 사제 임직식은 숫양 한 마리를 몽땅 태워 번제물로 봉헌합니다. 번제는 하느님에게 받은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의미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사제 임직식 때 제물의 피를 사제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는데, 이로써 몸 전체(머리에서 발끝까지)가 거룩하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렇듯 사제와 제단을 끊임없이 정화하고 성별하는 것은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야 거룩하신 하느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0,12“네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세어 인구 조사를 실시할 때, 사람마다 자기 목숨 값으로 주님에게 속전을 바쳐야 한다. 그래야 인구 조사 때문에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 

징집 대상자인 스무 살 이상 남자 수를 조사하는 것은 곧 임금이 쓸 수 있는 병력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힘을 살피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일로 재앙을 당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피하려면 사람마다 속전을 내야한다는 규정이 선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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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  

25,1-31,17을 자세히 읽으면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시작 어구가 일곱 군데 나타 물두멍(30,17-21) 납니다(25,1; 30,11; 30,17; 30,22; 30,34; 31,1;31,12 참조). 이를 창조의 일곱 날과 대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성막이라는 거룩한 공간과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시간, 이 두 제도가 거룩한 백성을 지키고 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32,4아론이 그 금을 그들 손에서 받아 거푸집에 부어 수송아지 상을 만들자, 사람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인간은 약속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요? 산 위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현존의 거처로 성막 건설을 지시하시는데,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현존을 표상하는 금송아지 상을 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론은 백성의 요구를 거부할 때 일어날 사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합작하여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습니다. 고대 근동 일대에서는 수송아지나 황소를 힘과 활력,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 신성을 나타내는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그들의 상상력과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신은 그들에게 속하고 그들의 뜻을 따르는 ‘너의 신”(32,4)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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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 니까? 13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백성이 전부터 “목이 뻣뻣한 백성”(32,9)이라고 밝히며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32,10)고 이르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필사적으로 주님께 애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변명하거나 호도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집트 탈출 사건)과 하실 일(이집트인들이 야훼 하느님의 구원 의도를 오해하지 않게 그분의 이름을 지키는 일),그리고 그분의 말씀(선조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맹세)에 의지하여 간구합니다. 결국 모세의 간구는 받아들여집니다. 하느님을 믿고 매달린 모세의 중재 기도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새로운 사랑을 체험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은총(자비와 용서)을 선포하십니다. 당신이 자비하고 너그러우시며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라고 선포하십니다(34,6 참조).

 

32,26모세가 진영 대문에 서서, “누구든지 주님의 편이거든 나에게로 오너라.”하고 외치자, 레위의 자손들이 모두 그에게 모여들었다.  혈육을 죽이면서까지 야훼께 헌신한 레위 후손들은 사제직으로 초대됩니다. 혈육 살해라는 곤혹스러운 표현을 통해 모름지기 사제는 야훼를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33,7모세는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이 만남의 천막은 한 사람이 칠 수 있는 작은 천막으로 성막과 달라 보입니다. 설치되는 장소도 성막처럼 ‘진영 가운데’ (민수 2,17 참조)가 아니고 ‘진영 바깥’ 입니다. 또 그 안에는 계약의 궤 같은 것이 없고 필요할 때마다 구름으로 표상되는 하느님의 현존이 잠시 머무르십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과 말씀을 나늘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나만의 천막’을 어디에 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33,22"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굴에 넣고,내가 다 지나갈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23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눈에 드는’ 은총을 입어 그분과 특별한 사이
가 되었지만,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기보다 백성 전체의 구원을 위해 간청합니다. 이 간청은 자기 힘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야훼 하느님없이는 어떠한 구원도 제대로 열매 맺지 못하리라는 점을 깨달은 모세의 애절한 호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하느님의 절대성을 깨달은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제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 주겠다” (33,17)고 대답하시며, 당신의 영광을 뵙고자 하는 모세에게 당신의 등은 볼 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우리 삶에 동행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현재에 감사할 때, ‘아, 그때는 몰랐는데 그분이 나와 함께하셨구나’ 하며 우리 삶에 함께해 주셨던 그분의 등을 보게 됩니다.

 

39,42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든 일을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43모세가 그 모든 것을 살펴보니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축복하였다. 40,34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이렇게 해서 성막, 곧 만남의 천막 공사가 모두 끝났다”(39,32)는 표현은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창세 2,1)와 호응하며, 하느님의 지상 거처인 성막을 마련 한 일을 하느님의 우주 창조에 빗대어 새로운 창조처럼 강조합니다. 탈출 사건과 함께 시나이 산에 마련된 성막은 인간에게 새 삶을 열어 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사이에 지상 거처를 마련하고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는 모세의 온전한 순종을 통해,하느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며 세상과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주권이 드러납니다.이제 하느님의 현존이 구름과 불의 모습으로 우리의 여정을 인도 할 것입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10년 2월 407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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