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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_베텔의 꿈(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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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3 09:24 조회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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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

 

베텔의 꿈
배미향 에밀리아

 

배미향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언어임을 체험하며 이를 나누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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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무 극적인 장면을 접하고 나면 다음 장면에 대한 영상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23장과 24장이 그러하지만,이 부분은 약속의 첫걸음이 실현되는 중요한 곳입니다. 23장의 첫머리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이 곧바로 소개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는지 아브라함은 부라부랴 아내의 묘지를 구입합니다. 이는 12장 이후에 나오는 첫 번째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묘지를 매매하는 절차가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이 내용은 선조 시대보다 훨씬 더 후대에 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팔레스티나에 있는 자신의 땅에 묻히고 싶은 유배민들의 원의를 선조 시대로 소급하여 기술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맥상으로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12,1),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12,7)고 하신 약속이 23장에와서야 이루어집니다. 비록 동굴 하나지만 그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 전체를 품고 있는 씨앗입니다.


24장의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이 아름다운 ‘종의 기도’를 통해 개인의 삶에 드러납니다. 동시에 당신의 약속을 서서히 이루시는 하느님의 움직임도 드러납니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15,4-5)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이 혼인을 통해 후손과 연결됩니다. 땅과 후손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약속된 미래가 열립니다. 또 하느님의 섭리는 "낙타들도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계속 길어다 주겠습니다"(24,19), "가겠습니다"(24,58) 하는 등 너그러울뿐더러 용기 있는 여성 레베카에게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합니다. 시조모始祖母가 될 레베카는 주님의 이끄심을 믿고기꺼이 낯선 땅으로 떠날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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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뇨 에스테반, 우물가에 있는 엘리에젤과 레베카, 프라도 미술관.] 


25,12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다.  아브라함의 죽음에 이어 이스마엘의 족보가 언급되면서 아브라함과 아랍족이 혈연관계로 연결됩니다. 오늘날 아랍족과 이스라엘이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 관계에 있지만, 성경 저자는 정치적 관계보다 한 핏줄이라는 근원적 관계에 더 주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아브라함 가문이 아랍족까지 포괄하는 아주 큰 민족을 이뤄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19절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에사우와 야곱이 태어난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기에서 시작되는 ‘야곱과 야곱 집안의 이야기’는 창세기의 끝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출생(25,26)부터 죽음(49,33)에 이르는 전 생애가 성경에 자세히 소개된 첫 인물입니다. 야곱과 에사우는 쌍둥이로 어머니의 자궁에서 열 달 동안 함께 자라면서 계속 심하게 다룹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나오면서,비록 형 에사우에 밀렸지만 야곱은 악착같이 형의 발뒤꿈치(아케브)를 붙잡고태어납니다. 그래서 이름이 ‘야아코브’(발뒤꿈치를 잡는 이)입니다. 그러므로 쌍둥이 야곱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생활합니다. 형제의 삶은 서로 다른 생존 방식과 문화를 반영합니다. 그런데 성경 저자는 이사악이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합니다. 형제의 다른 점이 부모의 편애로 인해 한층 갈등을 키옵니다. 그런 야곱과 에사우에게서 카인과 아벨을 봅니다. 원역사의 인간 조건이 선조사의 인간 삶과 연관하여 어떻게 전개 되는지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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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1그러나 야곱은 “먼저 형의 맏아들 권리를 내게 파시오.” 하고 말하였다. 32그러자 에사우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맏아들 권리가 내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33그래서 야곱이 “먼저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하자, 에사우는 맹세를 하고 자기의 맏아들 권리를 야곱에게 팔아넘겼다. 27,35그러나 이사악이 말하였다. ‘‘네 동생이 와서 나를 속이고 네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구나.” 36그러자 에사우가 말하였다. “이제 저를 두 번이나 속였으니, 야곱이라는 그 녀석의 이름이 딱 맞지 않습니까? 저번에는 저의 맏아들 권리를 가로채더니, 보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습니다."  25장 31절부터 34절에는 4맏아들 권리’ 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오고, 27장에는
야곱이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이야기가 나 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에사우가 이야기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며, 그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된다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하느님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사우는 맏아들 권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보이는 것만 치중하여 미래에 이루어질 보이지 않는 권리를 소홀히 대합니다. 그래서 무디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는 에사우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맏아들 권리를 빼앗기 위해 형의 약점(배고픔)을 노리고, 확실한 구속력을 얻기 위해 맹세까지 요구하는 기회주의자 야곱이 하느님의 복을 받고 선민정못이 된다는 점은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구원’과 ‘멸망’ 이라는 흑백 논리로 쉽게 이해하려고 합니다. 선택된 존재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고, 선택받지 못한 존재는 멸망의 길로 간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다고 해서 에사우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돌보시듯 에사우도 돌보십니다. 에사우도 야곱처럼 하느님에게서 많은 복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를 배제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본을 선택하신다고 깨달아야 합니다. 곧 당신의 구원 계획을 좀 더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선택하여 표본(모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야곱 이야기에서 야곱은 형의 축복권을 빼앗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정든 고향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향해 걸었던 길과 반대로 하란으로 향합니다. 그 여정은 팔레스티나 북부 지역을 거쳐 메소포타미아까지 가는 아주 먼 길(약 837km)이었습니다. 신부감을 구하러 출발했지만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세월이 한참 흘러 어머니 레베카가 죽은 뒤에야 약속의 땅으로 돌아옵니다. 왜 그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을까요? 영적으로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인간적으로 선택받은 자가 되려 했던 야곱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32,32). 라삐들의 해석에 따르면 밤부터 시작하여 새벽 여명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밤에서 아침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야곱의 내면을 나타냅니다. 곧 우리가 걸어야 할 영적 여정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개인이나 집단을 선택하시는 것은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파견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탈출기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자신들이 본 것(체험한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듯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그분께서 구원하시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표본)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눈앞에 보이는 물질에 빠져 본질(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우매한 에사우가 되기도 합니다. 또 경쟁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야곱처럼 남을 속이고 남의 것을 가로채기(27,35 참조) 위해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란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야곱처럼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를 모델로 세우십니다. 우리도 약은 야곱처럼 세상살이에 치여 영적인 것을 잃고 살아가지만,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영적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사람, 구원의 길을 걷도록 초대된 하느님의 선민으로 바뀝니다.


28,10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그는 비록 형의 장자권(베코라)과 축복권(버라카)을 빼앗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천막 아래서 어머니 레베카와 함께 살았던 따뜻함 대신, 아버지와 형을 속인 죄의식과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차가운 들판의 밤 한가운데 홀로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돌 하나를 주워다 베고 눕는 것입니다. 이처럼 큰 아픔을 겪어 본 적이 없었던 그는 복잡한 심정으로 뒤척이다 잠이 들고 꿈을 꿉니다. 천사들이 땅에서 하늘로 이르는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야곱은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가장 고통스런 삶의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좌절과 아픔과 두려움의 순간에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을 만납니다. 더 떨어질 수 없는 맨 밑바닥에서 하늘까지 차오르는 신비를 성경 저자는 ‘층계’ 와 ‘오르내리는 천사’ 로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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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귀환 경로(브에르 세바 → 베텔  하라  베텔] 

 

더 많이 움켜쥐려 노력했던 야곱은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잠들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뿌리인 가족과 고향마저 잃어버린 절망의 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보라,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28,15). 하느님을 체험한 그는 베고 잠들었던 돌베개를 세우고 기름을 붓습니다.


하느님을 참되게 만난 야곱은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28,21-22 참조)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 품에서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천국의 사냥개는 야곱의 모든 것을 다 빼앗습니다. 야곱은 다 빼앗겼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새롭게 나아갈 꿈을 꿉니다. 곧 "하느님의 집”(베텔),"하늘의 문”(28,17)에서 야곱의 영적 여정이 시작됩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5월 398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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