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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_깊은 고뇌의 강을 건넌 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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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3 09:53 조회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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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

 

깊은 고뇌의 강을 건넌 자
배미향 에밀리아

 

 

배미향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언어임을 체험하며 이를 나누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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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부터 펼쳐지는 요셉 이야기는 일관된 주제와 흐름을 지니고 있어 한 사람이 쓴 단편소설과 같습니다. 글을 이끌어 가는 주요 모티프는 ‘옷’ (요셉의 긴 저고리, 포티파르 아내의 유혹으로 벗어 던진 요셉의 옷, 파라오에게서 받는 요셉의 옷)과 ‘꿈'(요셉의 꿈, 시종장의 꿈, 파라오의 꿈), 그리고 '기근' 입니다.  지금까지의 선조 이야기(아브라함과 야곱)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거나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나타나지 않고 숨어서 인간사를 은밀히 이끌어 가십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그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나, 되돌아보면 그분께서는 인간이 저지른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며 온 세상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역사를 통해 이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지만 고통 가운데 그들을 지켜 주시고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섭리를 깊은 신학적 성찰로 담아냅니다. 

 

37,2요셉은 그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3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5한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도I었다.  열일곱 살 난 요셉은 이복형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여 우리를 당황케합니다. 아버지(이스라엘)는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그를 더 사랑하였고, 다른 형들과 달리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습니다. 이스라엘이 마음에 품은 편애만으로도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기가 충분한데, 눈에 드러나게 옷까지 다르게 입혔다니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들은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37,4)고 합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집안에 '평화(샬롬)’가 깨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들, 요셉과 형제들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동생이 고와 보일 리 없습니다. 철없는 요셉은 주위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곡식 단이 큰절을 하고,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자신에게 절했다’ 는 꿈(37,7) 까지 이야기해 더욱 미움을 삽니다. 그러나 베텔에서 꿈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던 야곱은 요셉의 꿈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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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프린트, 야곱의 아들 요셉과 그의 형제들, 일러스트, 1994.] 

 

37,18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였다. 19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아버지의 편애로 빚어진 형제들 간의 불편함은 결국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의 음모로 뻗어 갑니다. 37장 12절 이하를 꼼꼼히 읽으면 내용상 흐름이 맞지 않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며(13절) 유다가 나서서 요셉을 구하려 하고(26절),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에게 동생을 팔았다고 표현하는 부분(27절)이 있는가 하면, 르우벤이 나서서 형제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생각을 하지만(22절), 미디안 상인을 통해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 갑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대신 ‘야곱’ 이라고 기술합니다. 곧 유다와 르우벤을 강조하는 두 전승이 혼합되어 편집된 글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맏이입니다. 그러나 장차 이스라엘의 패권을 차지할 지파는 유다입니다. 그래서 성경 저자는 유다(지파)에 관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더 많이 언급합니다.


이어지는 38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지파와 달리 유다 지파의 기원을 전합니다. 일관되게 흐르는 요셉 설화의 맥을 끊는 느낌을 주면서까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이 성경인가 할 정도로 당혹스럽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대가 끊어질 상황에서 며느리 타마르는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하여 룻을 통해 다윗과 연결되는 페레츠를 낳습니다. 타마르의 행동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후손이 끊기지 않도록 정성과 힘을 쏟았다는 의미에서, 유다는 그가 ‘자신보다 더 옳다’(38,26)고 표현합니다. 가나안 여자 타마르는 자기를 내놓아 유다 지파를 이었기에 후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되며, 구원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룻 4,18-22; 마태 1,3 참조).

 

39,22전옥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를 요셉의 손에 맡기고, 그곳에서 하는 모든 일을 요셉이 처리하게 하였다. 40,8그들이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풀이해 줄 사람이 없다네.” 하고 대답하자,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꿈 풀이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꿈쟁이 요셉은 꿈 때문에 인생이 뒤틀렸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희망을 갖게 했다고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사 이역만리에 노예로 팔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죽음의 구덩이에 내던져지고, 포티파르 아내의 모함을 받는 등)을 겪은 탓일까요. 이집트에서 요셉의 모습은 형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던 옛날의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포티파르의 종이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나 한결같은 성실함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꿈 풀이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40,8) 꿈 때문에 꼬인 인생이라 ‘꿈이라면 말도 하기 싫다’ 며 손사래를 쳤을 법한데, "하느님께서 파라오께 상서로운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41,16)라며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결코 하느님에 대한 꿈(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41,46요셉이 이집트 임금 파라오 앞에 섰을 때,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 요셉은 파라오 앞에서 물러 나와 이집트 온 땅을 두루 돌아다녔다. 50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53이집트 땅에 들었던 칠 년 대풍이 끝났다. 54그러자 요셉이 말한 대로 칠 년 기근이 시작되었다. 모든 나라에 기
근이 들었지만, 이집트 온 땅에는 빵이 있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풀이해 주고 이집트의 온 땅을 다스리는 재상이 됩니다. 그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의미를 담아 아들들의 이름을 짓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과 내 아버지의 집안조차 모두 잊게 해 주셨구나”(41,51)라며 첫 아들을 ‘므나쎄’라 하고, "하느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셨구나”(41,52)라며 둘째 아들을 ‘에프라임’이라 합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살았지만 자기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그분을 믿고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꿈대로 7년의 풍년과 7년의 기근이 시작됩니다. 54절 이하에 나오는 ‘온 세상’ 이란 말에는 이집트뿐 아니라 팔레스티나도 포함됩니다. 이집트에 7년 동안 기근이 들었다거나 식량난을 겪은 셈족 집단이 이집트로 내려갔다는 사실은 성경뿐 아니라 이집트 문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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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이렇게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6그때 요셉은 그 나라의 통치자였다. 그 나라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이도 그였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절하였다.  7년 동안 기근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옵니다. 형들을 만난 요셉은 자신을 알아볼 리 없는 형들을 몰아붙입 니다. “너희는 염탐꾼들이다. 너희는 이 땅의 약한 곳을 살피러 온 자들이다”(42,9). 당시 이집트의 북동부를 자주 출입했던 가나안 사람을 예의주시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요셉의 의도 아래 형들이 변화합니다. 참말인지 “시험해 봐야겠다”(42,15)며 아우를 데려오라고 할 때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42,21).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기억해 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 거야”(42,21).


요셉은 형들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건과 비슷한 상황으로 몰아세읍니다.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막내 벤야민의 자루에 자신의 은잔을 넣어 결백을 더 주장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때 유다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종들의 죄를 밝혀내셨습니다”(44,16). 유다는 잔을 훔쳤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지었던 깊은 죄를 하느님께서 들춰내셨다고 깨닫습니다. 요셉은 물러서지 않고 “잔이 나온 사람만 내 종이 되고 나머지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에게 올라가”(44,17)라고 하며 자신이 겪었던 갈등을 재연합니다.

 

44,18그러자 유다가 그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20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01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33그러니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34그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저의 아버지가 겪게 될 그 비통함을 저는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연설은 구약성경에서 아주 뛰어나며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웅변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종으로 팔자  제안했던 형 유다가 이제 야곱을 살리기 위해 벤야민을 아버지에게 보내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서 형들의 회개를 봅니다. 상대방의 진심어린 고백은 용서와 화해를 가져오며 공동체를 회복시깁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힙니다.
 

45,4“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7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8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은 엄청난 고통(구덩이에 처넣어진 죽음의 상태-이집트에 노예로 팔림-포티파르 아내의 모함-억울한 옥살이)을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봅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하느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예비하신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안배와 섭리 안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재 삶에 주어졌던 픔과 질곡의 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요셉은 ‘모든 것을 통해 선으로 이끄시는’ (로마 8,28 참조) 하느님의 뜻을 자신 안에 담고 묵묵히 걸어갑니다. 깊은 고뇌의 강을 건넌 자만이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삶의 지혜는 깊은 고뇌의 강을 건넌 자만이 받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바람이 산을 흔들 수 없듯/ 칭찬이나 비난이 지혜로운 이를 흔들 수 없다

그는 밝고 고요하다/ 진리를 들으므로/ 호수처럼럼/ 순수하고 고요하고 깊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욕망이 일어날 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행복이나 슬픔이/ 그를 덮쳐도/ 그저 나아갈 뿐/ 허덕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법구경 제2권> 중에서).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7월 400호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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