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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0)_​​일상생활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가 되도록 살라는권고(로마 12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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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4 17:07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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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0)

​일상생활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가 되도록 살라는권고(로마 12장) 

김영남 다미아노 (신부·신약성경)​  

 

 

로마서 전체에서 ‘권고의 단원’ (로마 12,1-15,13)이 차지하는 위치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쓸 때 보통 앞부분에서는 교리적(이론적) 가르침을 다루고, 후반부에 가서는 신앙실천에 관한 일반적 권고를 한다. 예를 들자면, 테살로니카 일서는 4,1부터, 갈라티아서는 5,13부터 권고의 단원이 시작된다. 로마서의 경우에 권고의 단원은 12,1에서 시작하여 15,13까지 이어진다.

 

앞(1,16부터 11장 끝까지)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믿음을 통한 의화와 구원’에 관한 교의적 토론을 했는데, 이제부터 이런 토론을 바탕으로 ‘권고’를 하기 시작한다. 로마 6 ,4에서 바오로는 생명의 새로움 속에’ (en kainotetizoes)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이제 바오로는 여기 권고의 단원에서 ‘생명의 새로움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 권고 단원은 윤리신학 논문이 아니다. 이는 권고 내용들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오로가 로마서의 •권고의 단원’ 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들은 구체적이기보다는 일반적인데, 이렇게 주제가 일반적인 이유는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바오로가 창립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많은 주제들은 바오로가 과거에 창립하였던 다른 교회들에도 있었던 문제들, 특히 그가 그 당시 로마서를 쓰고 있던 코린토에서 그 지역 교회가 겪던 문제들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14,1-15,13에 나오는 토론은 바오로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었던 로마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서 권고 단원의 전체 구성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먼저 전반부(12,1-13,14)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일반적인 주제 여섯 가지를 다룬다. 그리고 후반부(14.1-15,13)에서 바오로는 그가 전해 들은 로마 공동체의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 사이의 갈등과 관련된) 특정한 문제를 다룬다. 이 후반부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신앙인 공동체 안에서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사랑의 빚’에 관하여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로마 12,1-2

12,1-2는 앞에서 보았듯이, ‘권고의 단원’ 전체를 시작하는 곳으로, 로마서의 권고를 전부 요약해 놓았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1절.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거론했던 것을 근거로 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바오로는 앞에서 그가 논의했던 것 전체의 메시지를 특히 ‘하느님의 자비’ 에 관한 메시지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비’와 관련된 단어가 그리스어로 똑같지는 않지만 11.31 에 사용된 eleos 명사와 12,8의 eleeo 동사를 참조할 것.


"권고합니다." 여기서 '권고하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동사는 그리스어로 parakalein이라고 하는데 이 동사는 para (옆으로, 가까이)라는 전치사와 kalein(부르다)라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가까이 부르다'(사도 28,20 참조). ‘초대하다’(루카 8,41 참조), '권고하다'(2코린 5,20; 1테살 2.11; 4,10; 5,14 참조), ‘격려하다'(1 테살 3,2; 5,11?), '위로하다'(1 테살 3,7; 4,18 이하 참조, ‘위로’라는 뜻의 명사 paraklesis의 사용에 관해서는 특히 2코린 1.3-7 참조). 

 

이런 여러 의미들 가운데 기초가 되는 뜻은 인격적 관계를 전제하는 ‘부름’ (kalein)이다. 사도 바오로는 권고 할 때, 당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parainein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parakalein 동사 또는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 parakfeis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바오로가 이 단어를 이렇게 애용하는 데에서 우리는 바오로가 하는 권고의 중요한 특성을 볼 수 있다. 즉 사도 바오로의 여러 권고는 단지 일방적인 '윤리적 지침들의 하달’이 아니라, 어버이가 자녀들에게 애정을 갖고 ‘가까이 불러들여’ 권고하는 듯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바오로의 권고는 격려하고 호소하는 성격을 근본적으로 갖고 있다. parakalein 동사는 로마 15,30; 16,17에서 다시 사용된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권한을 받고 파견된 사도’ 라는 자의식(1,5과 11.13 참조)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자신이 직접 세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해 권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라는 문장을 어디에 붙여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좀 달라진다. 이 문장을 그리스어‘ 원문에서 그 앞에 놓여 있는 ‘권고하다’는 동사와 연결시켜 이해할 경우에는, 바오로가 하는 '권고의 모티브'가 바로 하느님의 자비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그가 앞(9-11장, 특히 바로 앞 대목인 11,30-32)에서 말한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가리킨다.

 

반면에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라는 문장을 뒤따라오는 “(여러분의 몸을) 바치십시오”라는 동사와 연결시켜 이해할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맞갖은 제사로 바치는 행위 자체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의 덕분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사실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생활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대한 응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비’ 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원문에서 복수 형태로 되어 있는데(oiktirmoi), 이런 식으로 가끔 LXX에도 나온다(예컨대, 2사무 24,14; 다니 2,18).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라하맘'을 그렇게 옮겼다. 히브리어 ‘라하맘'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머니가 자기 태중에서 온갖 조심을 다해 가며 아홉 달이나 품고 있다가 출산하고, 핏덩어리인 그를 온 몸으로 양육해 가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애정의 끈을 잘 표현하고 있다(특히 이사 49.14-17 참조). 어떤 해석이 되건, 분명한 것은 바오로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삶은 '하느님의 자비'의 덕분이 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로마 9.16).

 

"여러분의 몸을"(ta somata hymon). 여기서 몸(soma)은 ‘영혼’과 대비되는 인간의 한 ‘부분 을 가리키지 않고, 하느님, 사람들, 세상과 관계를 맺고 행동하는 인간 전체를 가리킨다. 여기에 나오는 ‘몸을 바친다’는 표현은 로마 6.13의 다음 말씀을 연상시킨다.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여기서 바오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지던 희생제물들을 염두에 두고 비교하고 있다. 그 희생 제물은 짐승들을 도살해서 바치는 것으로써 사실상 ‘죽은 제물’ 이었다. 그에 비교해 볼 때 바오로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제사란 자신들의 삶 자체를 바치는 제사다. 그런 의미에서 ‘산(살아 있는) 제물’이다. 참조로 말하자면, 바오로 사도가 살아있던 시기에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가 활발하게 바쳐졌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70년에 로마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제사’를 바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성전’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한 곳뿐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합당한 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로 logikos라는 형용사인데,"logos(말씀, 이성[라틴어 ratio, 영어 reason])에 속한",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영어의 rational)이라는 뜻을 가질 수 있다. ‘로고스적 예배’란, 동물과 달리 정신(nous)과 영(pneuma)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 적합한(합당한) 예배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번역본에서는 ‘영적’(spiritual)이라고 번역한다. 아무튼 바오로에 의하면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가 되도록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합당한 것이다.

 

2절은 두 개의 명령문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동화되지 말라”는 부정명령문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되게 하십시오”라는 긍정명령문이다. 2ㄱ절.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여기서 ‘현세’, 즉 ‘이 세상'이라고 번역된 단어에서 '세상'에 해당되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aion이라고 하는데, 묵시주의(默示主義, Apocalypticism)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바오로가 이용하고 있다. 바오로 당대의 유다인들은 세상 역사를 크게 두 개의 aion(세상)으로, 즉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현재의 aion과 하느님 의 통치 가 드러 날 ‘다가오는 aion'으로 나누어 생각하였다. 아울러 현재의 세상 은 악이 온통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역사를 장악하고 계신 하느님께서 몸소 곧 악한 '현 세상' 을 없애시고 의인들을 위해 정의와 자비의 '새 세상'을 세우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를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새 세상 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현 세상’ 안에 살고 있지만, 곧 지나가 버리고 말 세상(1 코린 10.11; 갈라 1.4; 또한 1코린 7,29.31 도 참조)에 동화되지 말아야 한다고 바오로가 권고하는 것이다.

 

2ㄴ절.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변화되게 하십시오"라는 문장에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도움으로 (변화된다)”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의지와 생각과 행동을 변모시킬 것이 요청된다. ‘정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로 ‘nous’ (누스)인데, 인간을 지성적이며 윤리적 판단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변모(變貌, metamorphosis)는 내주內住하시는  하느님의 성령(로마 8,8)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성령을 받고(갈라 3,2-5; 1코린 12.13 참조)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는데(갈라 4,6-7; 로마 8,15-16 참조), 성령은 그들을 이끌어 준다(로마 8.12-14). “정신을 새롭게 하는 것”과 관련하여 콜로 3,10; 에페 4,23; 티토 3,5 참조.

 

2ㄴ절.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리스도 신자들의 행위의 규범이 된다.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분별할수 있게 하십시오).” 여기에 나오는 형용사들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요약해준다(에페 5,10 참조) .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8월 365호 

http://www.with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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