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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2)_서로 업신여기거나 심판하지 말고 서로 받아 주십시오(로마14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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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5 14:51 조회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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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2)

서로 업신여기거나 
심판하지 말고 
서로 받아 주십시오(로마14장)

김영남 다미아노 (신부·신약성경)​ 

 

 

맥락과 구성 로마서 권고 부분(12,1-15.13)의 마지막 단원인 14.1-15,13에서, 바오로는 공동체 안에 있는 ‘믿음[확신]이 강한 이들’과 '약한 이들'의 관계에 대하여 다룬다. 그는 “서로 업신여기거나 심판하지 말고, 서로 받아주라”고 권고하는데, 이는 ‘사랑의 의무’ (13,8-10)를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 상호관계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권고의 전체 방향은 ‘믿음[확신]이 강한 이들’과 ‘약한 이들’ 양쪽에 다 향하고 있지만, 강조점은 1절이 잘 보여주듯이 ‘강한 이들’을 향한 권고에 더 쏠려 있다. 즉 "약한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호소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이번 호에서는 14,1-15,13의 앞부분인 로마 14장만을 다룬다. 로마 14장은 1-12절과 13-23절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반부가 후반부보다 더 종합적이다. 전반부에서는 ‘강한 이들’과 ‘약한 이들’ 양쪽을 향해 다 말하고 있고, 음식 문제뿐 아니라 특정일 준수 문제(5~6절)도 다루는 데 비하여, 후반부에서는 ‘강한 이들’을 향한 권고의 성격이 짙고, 음식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로마 14,1-12

1ㄱ절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바오로는 우선 “약한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데, 전제되어 있는 권고의 대상은 ‘강한이들’이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서 ‘믿음’ 곧 그리스어 pistis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신앙,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라고 할 때의 ‘신앙’을 뜻하는가? 아니면 '확신(신념)’을 뜻하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여기서 pistis는 ‘신앙 이 아니라, ‘확신(신념)’ 을 뜻한다.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14장의 맥락과 관련된 것이다. 14장에서 다루는 문제는 2절에서 즉시 나타나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문제, 또는 5-6절에서 보여주듯이 ‘특정한 날 을 (축제로) 중시하느냐 아니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지, 로마서의 이론적 부분에서처럼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둘째는 2절에 그리스어 pisteu6( '믿다') 동사 사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절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무엇이나 다 먹을 수 있다고 믿지만"이라는 문장에서 ‘믿다 동사는 며기다 또는 ‘판단하다’, 더 나아가 ‘확신하다’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문장에서 ‘믿다’ 라는 동사가 지니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나중에 해설하면서 확인하겠지만 22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pistis도 확신(신념)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이 틀림없다. 이 점도 1절에 나오는 ‘믿음이 약한 이라는 어구에서 ‘믿음’을 확신(신념)의 뜻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러면 이 “믿음(신념)이 약한 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정 반대의 사람들 곧 ‘신념이 강한 이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믿음[확신]이 강한 이들’이란 ‘무엇이나 다 먹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2절 참조). 또 그들은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다.” 또 20절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다 깨끗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확신이 약한 이들’ 은 아직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하고, 제례적으로 볼 때 ‘더럽혀진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가려서 먹는 사람들, 또 특정한 날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이 ‘믿음[확신]이 약한 이들’ 을 정확히 규정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규정하려고 하였다. 사실,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1코린 8장과 10장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베드로의 현시 장면’(사도 10,9~16) 및 '안티오키아의 일화'(갈라 2,11-16)가 생생하게 제시하듯이, 유다인들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음식규정을 지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고, 그래서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초창기 교회 시대에는 이 음식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로마 14-15장에 나오는 ‘믿음[확신]이 약한 이들’을 모두 ‘유다인 그리스도인블 이라고 제한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도, 동료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을 받아 율법에 따라 음식을 철저히 가려 먹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을 터이고, 또 반대로 유다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는 사도 바오로처럼 근본적으로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조로 미리 말하면, 로마 15,1에서 바오로는 “〔믿음이〕강한 우리는”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을 ‘강한 이들’ 의 입장에 포함시키고 있다. ‘지식의 차원에서 보면’ 분명히 바오로는 그런 ‘강한 입장 에 서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차원’ 에서 ‘약한 이웃의 처지를 고려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참조 1코린 8,1-13).

 

2ㄴ절 "그러나 여러 견해를 두고 논쟁할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는 마십시오.

여기서 ‘여 러 견해’ 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dialogismoi는 번역본 별로 ‘토론할 만한 일볼, '의심할 여지가 있는 일들’, 또는 단순히 ‘의견들’ 등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바오로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관점에 따라 좀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일들, 예컨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와 같은 부차적 문제(14.17이 보여주듯이 바오로에게 음식 문제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었다.)를 가지고 서로 업신여기거나 심판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라고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3절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 먹는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가려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 14장에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의 핵심 이 잘 드러나 있는 곳은 바로 3절이다. '강한 자'이든 ‘약한 자’이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심판하지 말라는 이 권고는 결국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라”(1 절 참조)는 말이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그러한 권고를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로 “하느님께서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는 믿음을 제시한다. “하느님께서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 이유접속사 gar 참조)라는 이유는 14,1-15,13의 단원에서 중요한 논거로 작용한다. 그리스어 동사 proslambaneo(기꺼이 받아들이다)가 14,1.3에서 사용되고, 나중에는 15.7과 같이 중요한 구절에서 다시 사용된다. 15,7ᄂ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은 14,1에서 시작된 긴 권고의 결론을 내리는 단락의 첫 구절이다. 바오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자비롭게]하신 일이 신자들의 행동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14,20에도 나온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음식 때문에 그르치지 마십시오."

 

7-9절은 문맥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곳인데, 부활 신앙을 근거로 한 바오로의 사생관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7-8절). 바오로의 이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육체적 죽음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시작된 새 생명의 한 과정일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육체적 죽음을 사이에 둔 이편의 생명과 저편의 생명이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편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는 생명’이고, 저편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연상된다. 로마 14,8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 대한 바오로의 고백이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사생관死生觀이 바오로 사도의 생각 속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여기에서는 그것이 음식 문제 및 특정일 준수 문제를 얘기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였다.

 

 주목할 점은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권고와 함께 “형제[자매]를 심판하지 말라”는 경고가 매우 강경한 어조로 반복되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4절),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10절). 여기 10절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심판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2코린 5,10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10월 367호 

http://www.with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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