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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3)_공동체 내의 일치에 대한 호소와 그리스도의 모범 (로마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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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8-09-05 16:08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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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해설(23)

공동체 내의 일치에 대한
호소와 그리스도의 모범
(로마 15,1-13)

김영남 다미아노 (신부 · 가톨릭대학교 · 신약 성서) 

 

 

바오로의 사도직 이해(로마 15,14-21)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15,14-21 은 로마서 전체의 종결부분이 시작되는 단락이다. 로마서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바오로는 우선 자신이 사도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로마의 교우들에게 정중한 문체로 알려주는데, 로마서 서문(로마 1,1-7)에서 피력하였던 내용이 많이 반복된다. 15,14-21 과 1,1-7은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수미상관법찰尾相關法(inclusion)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14-15절에서 바오로는 자신이 앞에서 길게 말한 ‘권고’(또는 서간 앞부분에서 말한 내용 전체)가, 수신자들인 로마 교우들의 입장에 서 볼 때,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주제넘은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바오로 사도가 직접 세운 것도 아니었고, 로마서 집필 당시 그는 직접 그곳에 간 적도 없었으며, 로마 공동체의 대다수는 바오로를 모르던 사람이었음을 생각하면, 바오로의 이런 염려가 충분히 이해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바오로는 우선,수신자들(로마의 교우들)을 “나의 형제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그들에 대한 깊은 신앙적 형제애를 표현한 다음. 그들에게 긴 권고를 한 이유가 그들이 신앙적으로 무지하거나, 서로 가르칠 능력이 없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그런 다음 15절에서는 바오로가 그런 편지를 쓴 것도 느님께서 그에게 은총으로 베풀어 주신 사도직의 수행이었다는 내용의 말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사도직의 권위’를 내세우는 데 있지 않고, '사도직의 은총적 성격'에 있다.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라는 표현은 수신자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려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 바오로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도직을 얼마나 은혜롭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1코린 15,8-10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이미 로마서 서두인 1,5에서 “은총의 사도직”이라는표현을 사용한 적 이 있다.

 

16절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로마 1,1.5, 특히 11,13에 나오는 “이민족들의 사도”라는 바오로의 표현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여기 로마 15,16에서 새롭고 중요한 점은 바오로가 자신의 ‘하느님 복음 전파의 사도직'을 ‘사제직 수행’에 비유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 로마 15,16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hierourgeo다. 이 동사는 사제 (그리스어 hiereus)가 성전에서 제물를 바치는 행위를 묘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동사를 쓰는 데서 우리는, 바오로 자신이 ‘하느님의 복음 전파’의 일을 얼마나 거룩한 소명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그러면 바오로가 15,16에서 말하는 제사의 제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오로의 사도직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여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다른 민족들”이다. 도살된 죽은 짐승들이 아니라, 바로 ‘살아 있는 이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라는 것이다(참조 로마 12.1). 필리 2,17에서 바오로는 필리피 교우들이 바치는 ‘믿음의 [희생] 제사에 대하여도 말한다. 참조로 말하면, 바오로는 1코린 11.20(참조 사도 20,11)에 따라 ‘성체성사 (주님의 만찬)를 주례했다고 볼 수 있고, 또 1코린 1,14-16에 따라 세례성사를 거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사도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사명은, 어느 한 곳에 정주하여 성사를 집행하는 것보다는,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방인(이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루 빨리 하느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데 있다고 이해하였다(참조 특히 1코린 1.17).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이라는 표현은 바오로에게 중요하다.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 활동의 좋은 결과(예컨대 신자들의 성화聖化​)는 ‘성령의 힘으로’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이해하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18절과 19절에도 표현되어 있다.

 

18절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 구절도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로 이해하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고 이해한다. 바오로 자신은 다만 ‘그리스도의 도구’ 역할(“나를 통하여”)을 할 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라는 표현은 1,5에 나왔던 "민족들에게 믿^의 순종을 일깨우려고”라는 말씀을 떠올려 준다. 여기 로마 15,18에는 "믿음의 순종”에 믿음의’ 가 나타나있지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말과 행동으로, [19절]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문장은 바오로의 사도적 활동이 빈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여러 표징과 이적도 그의 활동에 수반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말로만 ‘하느님의 나라 를 선포하지 않으시고 여러 표징들을 행하셨다. 기적과 같은 놀라운 표징들뿐 아니라 놀라운 행동들도 하셨다. 바오로 서간 외에도, 사도행전과 다른 서간성서들을 보면 초대교회도 말뿐 아니라, 한마음 한몸으로 일치하여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등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19절 끝에 나오는 “하느님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는 표현은 16절에 이미 나왔던 생각(“성령으로 거룩하게 된”)을 발전시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바오로는 자신의 모든 사도적 활동이 결국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19ㄴ절: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

여기서 바오로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사도직 활동을 지리적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돌이켜 보고 있다. 바오로는 그동안 지중해의 동부 지역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일단 마쳤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19절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는 그 넓은 지역을 빠짐없이 다선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오로는 간선도로를 이용하여 여행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쳐 나갔다. 일리리쿰(Illyricum)은 로마제국의 속주의 하나로 오늘날 크로아티아(Croatia)의 아드리아 해안(이탈리아 반도를 바라보는)쪽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문제는 신약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일리리큼에 바오로가 갔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나 ‘테살로니카 에 들렸을 때, 일리리쿰 쪽에도 다녀올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테살로니카에서 에그나티아(Egnatia)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좀 더 가면 일리리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절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점은 바오로가 자신의 선교 출발점을 ‘예루살렘’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바오로의 선교활동의 출발지는 안티오키아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태 장소이며, 그리스도 사건이 이루어진 곳이다. 그런 점에서 바오로가 예루살렘을 자신의 선교활동의 출발지로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갈라 1,17-19을 보면, 바오로는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그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 을 만났고, ‘케파’ 를 찾아가 보름 동안 함께 지낸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만 가지고 단독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이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다른 증인들(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특히 1코린 15,11 참조).

 

"예루살렘에서 …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했다.”는 말과 관련하여, “이방인들(이민족들)의 사도”(로마 11,13; 참조 갈라 1,16; 로마 1.5)로 자신을 이해하고 있던 바오로가 유다인들에게도 선교를 하였는지 여부에 관한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유다인들에게 선교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어느 지역에 갔을 때 으레 유다인 회당부터 찾아간 것으로 나온다. 사도행전을 제쳐놓고, 바오로의 친서만 보더라도 답은 분명해진다. 예컨대 2코린 11,24에 보면 바오로는 유다인들로부터 39대의 매를 맞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유다인들에 대한 선교를 전제한 것이다. 또 1코린 9,20에 나오는 “나는 유다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습니다"라는 말도 바오로가 때때로 유다인들에게도 선교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다만 앞에서 필자가 이미 언급하였고 다음 구절인 20절에서도 확인되듯이, 바오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은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이방인들의 지역’에 하루빨리 복음을 널리 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지역에서 유다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다.

 

20절 "이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려는 것입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것”이 라는 로마 15,20의 표현을 너무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자존심 또는 다른 사도들과의 경쟁심의 차원에서 한 말로 이해하면 더욱 안 된다. 이 점은 로마 1,15(“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를 보면 분명해진다. 로마 공동체는 분명히 바오로가 기초를 놓은 공동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 1코린 3장(특히 5-9절)을 보면, 복음을 선포하던 자들에게는 그들이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심는 역할'이든, '물을 주는 역할'이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바오로든 아폴로든 둘 다 하느님 이 주인으로 계신 신앙공동체라는 "하느님의 밭’에서, 주인이신 하느님을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 일꾼들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1 코린 3,11 참조)인,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라는 기초를 놓는 것이었다. 20절은 바오로 사도가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의 사명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곳이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6년 11월 368호 

http://www.with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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