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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45)_유다의 발도 씻어 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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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4-17 02:45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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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

유다의 발도 씻어 주신 예수님

이종훈 마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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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전교 여행을 하시면서 많은 가르침과 치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고 따르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수석 사제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최고 의회는 죽었던 라자로를 소생시키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요한 11,53 참조).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 전교 여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운 실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정황을 예감하지 못하셨을 리 없는 예수님께서 인간적이면서도 독특한 행동을 하십니다. 바로 마지막 파스카 축제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장면(요한 13,1-11)입니다.

 

1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 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5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지내는 마지막 축제 

그분께서는 이번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마지막 파스카 축제임을 직감하셨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요한 13,1).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이런 심중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축제를 지내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을 것입니다. 철부지(마태11,25 참조) 같은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애틋한 눈길과 사랑 가득한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그분께서는 지난 수년 동안 믿고 따랐던 당신이 잡혀가고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제자들이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받으리라 예감하며 매우 안타까워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결국 대부분 떠나갔습니다(요한 6,66 참조). 그래도 그들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라고 고백하면서, 그분과 함께 지금까지 있어 준 고맙고 사랑스러운 형제들이었습니다. 도적떼와 맹수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먼 길을 다니고, 편하게 머리를 기대고 잘 곳도 마땅치 않은(루카 9,58 참조) 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분을 따라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들과 잠시 이별해야 할 시간이 왔기에,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한 13,1).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잠시 후면 헤어져야 하기에 안타깝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셨는데, 그것이 발을 씻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특별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유다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잔치에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면 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루카 8,44 참조). 이런 일은 대개 그 집 종들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발을 씻어 주는 그 집 종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종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로 하찮은 일을 스승이신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비록 전교 여행이 고되서 격식을 갖춘 식사를 하는 날이 거의 없었더라도 축제일만큼은 격식을 갖추어 편안하게 음식을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무진 바람일 뿐, 아무리 축제일이라 하더라도 그들 형편에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제자들의 그런 마음을 읽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제자에게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던 차에, 그들의 소박한 바람을 알아채시고 기쁘게 자리에서 일어나셨을 것입니다. 열두 명이나 되는 형제들의 발을 제대로 씻어 주자면 복장은 간편해야 했기에, 긴 옷이 바닥에 끌리지 않게 하려고 수건을 끈 삼아 허리에 두르셨을 것입니다. 이제 스승의 복장은 완전히 종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그런 파격적인 행동에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백성을 가르치고, 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며 종교 지도자들과 당당히 맞섰던 그 높으신 분이 이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당황했지만 스승의 행동이 너무나 파격이라 얼떨결에 그분의 손에 발을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이런 행동이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을 따라다니며 고생했던 제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분을 겸손하다고 더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삶의 무게에 시달리고 구원의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진정한 휴식처와 안식이 되었습니다(마태 11,28-29 참조). 어쩌면 가르치고, 치유하고, 위선에 대항했던 모든 것이 봉사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이런 행동이 제자들에게는 파격으로 보였겠지만, 당신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척’하실 수 없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시는 사랑 넘치는 자리에는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도 함께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발도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유다가 이미 스승을 팔아넘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요한 13,2 참조), 예수님께서도 이미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요한 13,11.27; 마태 26,48-50 참조). 아니 그를 제자로 선택하실 때부터 그가 후에 당신을 배반하리라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요한 6,70-71 참조). 으뜸 사도인 베드로도 유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스승의 돌발 행동에 더러운 발을 엉겁결에 내맡긴 다른 제자들과 달리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8)라고 그는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할 것”(요한 13,8)이라는 말씀에,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청하면서 스승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 세 번씩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도 이미 알고 계셨고(요한 13,38 참조), 그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베드로, 그리고 다른 제자들 모두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을 것입니다. 죄가 클수록, 결점이 많을수록 더 깨끗하게 씻어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9,10 참조).

 

온 정성과 사랑으로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닦아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겉으로는 사랑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혹시 마음속으로는 유다의 배신 때문에 당신이 겪으실 고통과 죽음을 생각하며 분노하고 계시진 않으셨을까요? 분노는 아니더라도 지독한 배신감에 울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하느님께는 거짓이 있을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그러실 수는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괴로우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이 사랑의 행위를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겉과 속이 같은 하느님이시기에 당신을 신문하는 빌라도와 대사제들 앞에서 침묵으로 대답하셨고, 당신의 그런 대답이 죽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시면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당신을 배신할 것이라 알면서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시고, 이제 당신을 팔아넘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도대체 그런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거기에서 비롯한 사랑은 얼마나 큰 사랑인지요? 헤아리려 하면 할수록 숨이 막히는 듯합니다. 그분의 인성 속에 있을 법할 배신감과 서운함이 사랑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큰 사랑은 하느님이시면서도 기꺼이 종이 되셨던 마음과, 섬기는 삶을 사셨던 그분의 지극한 겸손에서 비롯합니다. 더는 낮아질 수 없는 자기 비움과 더 높을 수 없는 겸손 안에 미움과 복수심과 악의는 도저히 자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큰 사랑과 마주하면서 신비스러움을 느낍니다.

 

 

우주 만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돌과 나무, 물과 같은 자연은 주어진 원리에 따라 변하고 동물과 곤충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은 속으로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싫어도 좋은 척할 줄 알고, 곤경에 빠뜨릴 악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다가갈 줄도 압니다. 마치 유다가 평화의 입맞춤으로 자기의 스승을 팔아넘겼던 것처럼(마르 14,44-46 참조). 참으로 무섭고 비참합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모두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생각하고 결심한 대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평화롭겠습니까? 인간의 거짓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고, 불행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보다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분열된 모습을 내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악행을 하면서도 선행을 한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요한 16,2 참조). 이러한 우리에게 당신을 배신할 유다를 사랑하셔서 그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어 주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유다가 당신을 팔아넘기고,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신 행동은 가식과 이중적 행위가 아니라, 당신 맘속에 있는 깊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왔으며(마르 10,45),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는 말씀의 다른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 특히 반복되는 죄를 피하기 원하면서도 그 유혹에 힘없이 주저앉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매번 죄를 묻고, 그에 대한 벌을 준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나아지려는 우리의 결심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 주고 인정해 준다면, 또 그러한 일들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마태 18,22)이나 반복되어도 똑같은 마음으로, 아니 더 깊은 연민으로 용서하고 격려하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건 없고 한결같으며 무한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그의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받아들이는 것인가 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장점은 물론이고 결점과 상처를 비롯한 약점들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빚어 만드셨습니다. 겉뿐만 아니라 속도(루카 11,40 참조)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데, 어리석게도 자신의 약점과 죄를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굳이 우리의 죄와 약점을 들추어 꾸짖고 억지로 우리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모든 허물과 배신의 죄마저 아시면서도 그들의 더러워진 발을 묵묵히 정성스럽게 씻어 주시듯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죄뿐 아니라 모르는 죄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알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기보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러워진 우리의 발을 씻어 달라고 그분께 내맡길 수 있습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8년 9월 390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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