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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51)_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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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4-29 01:51 조회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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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25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5-30).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25-26

주님의 기도를 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 더는 기도하지 못했다는 어느 수도승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을 때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의 특권인지요. 기도 중에 하느님아버지주님이란 호칭이 나올 때 얼마나 사랑과 정성을 담아 주님을 부르며 앞에 주님이 계신 듯 기도드리는지요? 저는 미사 중에 주님을 부를 때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셨을 때처럼 주님을 뵙고 대화하듯 기도하려고 애씁니다. 수도사제로 서품된 후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더 많이, 원 없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바친 기도는 주로 찬양과 감사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찬양과 감사의 기도가 우리를 밝고 생기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처럼 순수하고 단순한마음을 지닌 철부지로 만들어줍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는 말씀처럼 하늘나라의 신비는 철부지들에게 계시됩니다. 이는 곧 아버지의 선하신 뜻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27

예수님과 아버지는 독보적 관계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작 중요하고도 힘든 것이 관계입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도 남남으로 사는 부부가 있고,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 함께 살아도 하느님과 남남으로 사는 수도자가 있습니다. 과연 나와 형제들의 관계, 나와 하느님의 관계는 어느 정도일까요? 작년 여름수도원 배밭에 핀 들꽃들을 보며 쓴 글입니다.

 

아침 이슬 머금은/ 연분홍 메꽃들/ 연노랑 달맞이꽃들

아무도 보아 주는 이/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해/ 저리도 청초한가 보다.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한 들꽃들은 바로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이들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과 깊이 관계를 맺을수록 믿음과 사랑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아무리 수도원의 환경이 좋아도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힘들게 살다가 떠나지만, 환경이 조금 안 좋아도 주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기쁘게 살아갑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형제들과의 관계와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과 깊이 일치하는 이들의 내면은 반석 위에 지어진 집과 같아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 갔을 때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도 당신과 맺은 믿음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아버지와 깊이 일치한 이들이 진정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

삶이 무겁고 고달플 때 내면에서 들리는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짐을 덜고 마음에 안식을 줍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고해성사 보속을 줄 때 처방전으로 이 말씀을 자주 써 드리는데, 많은 분이 이 말씀을 받는 순간 눈물을 글썽이곤 합니다. 그만큼 삶이 고달프고 무겁다는 이야기입니다. 삶의 무게는 살아갈수록 무거워지고, 각자 자기 삶의 무게로 힘겨워하기에 누구에게 도움을 받기도 참 힘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찾아갈 유일한 안식처는 주님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아가 삶의 짐을 가볍게 하고 안식을 얻으라고 성체성사, 고해성사, 피정이 있습니다.

 

피정 강론 때 신자들에게 자주 묻습니다. 삶은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많은 분이 빙그레 웃으며 바로 답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감사하며 기쁘게 살 때는 삶의 짐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져 삶이 선물이 되지만,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시들어 불평불만이 가득할 때는 삶은 졸지에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삶이 무겁고 고달플 때 즉시 주님께 달려가 주님의 사랑으로 충전 하는게 지혜입니다. 주님 사랑으로 꽉 채울 때 허상이 걷히고 삶의 짐이 가벼워져 삶은 선물이 되고 주님의 안식이 저절로 뒤따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29-30

6월 예수 성심 성월에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나 수도원, 가정공동체는 우리의 스승이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배움터이고, 우리는 평생 그것을 배워야 하는 학생입니다. 이 주님의 배움터는 졸업이 없어 산 햇수가 학년이고 죽으면 졸업입니다.

 

한편 온유와 겸손은 바로 주님의 멍에입니다. 일견 어려운 듯해도 예수 성심의 온유와 겸손을 체득할수록 우리의 불편한 멍에는 주님의 편한 멍에로, 우리의 무거운 짐은 주님의 가벼운 짐으로 바뀌며 주님의 안식이 저절로 뒤따릅니다. 방법은 부단히 낮아지면서 삶을 비워가는 것뿐입니다. 당신을 비우시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주님이시며(필리 2,7 참조), 당신을 낮추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이십니다(필리 2,8 참조). 낮아짐과 비움의 영성을 묵상하다 수도원 경내를 덮은 민들레가 생각났습니다.

 

땅바닥/낮게/ 활짝 피어난

민들레 무리/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

, 알겠다/ 낮아지고 비워져/ 활짝 열려야

하늘을 담을 수 있음을.


노란 민들레 무리는 하늘이신 하느님을 담은 낮아지고 비워진 이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런 낮아짐과 비움으로 주님을 닮으려 하지 않고 높아지고 채우려고만 한다면 겸손과 온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고 공동체의 평화도 요원합니다. 그러니 삶에서 오는 온갖 상처나 아픔을 낮아짐과 비움의 계기로 활용하여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이들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과 복을 받습니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6월 399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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