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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53)_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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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4-29 02:24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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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24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사람들이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수확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13,24-30).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24)

꿈과 비전이 있어야 삽니다. 삶의 방향과 꼴을 잡아 주는 것이 꿈이자 비전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인간의 꿈이자 비전임을 깨닫습니다. 이 비전을 잃어버릴 때 열정은 사라지고 방황과 혼란이 계속됩니다. 예수님의 비전은 하늘 나라였습니다.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한 후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한 그분의 첫 외침은 하늘 나라였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하늘 나라의 비전을 잃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오늘의 우리를 일깨우는 주님의 우레 같은 말씀입니다. 하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좋은 씨를 뿌리는, 삶에 충실한 착한 사람들은 이미 하늘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성속의 분리가 얼마나 비성경적 사고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에 관한 여러 비유를 통해 지금 여기서 은밀히 실현되는 하늘 나라를 감지하고 삶의 지혜를 배우라고 촉구하십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25-26)

가라지의 신비는 바로 악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지상의 하늘 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순전히 밀만 있는 공동체(하늘 나라)는 환상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한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말이 생각납니다. 가라지의 유래를 탐구하는것도, 자지 않고 지켰더라면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다 부질없습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도 가라지 같은 생각은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삶이 가라지와의 전쟁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삶의 밀밭을 가꾸고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27-28)

종들은 현명한 신자들을 상징합니다. 삶의 신비와 악의 신비에 직면했을 때 즉시 주님을 찾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로 무장해야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과의 전쟁, 가라지와의 전쟁을 슬기롭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있어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의 출처를 묻는 종들에게 집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하실 뿐 원수에 대해 구구히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끝없이 펼쳐질 원수에 대한 쓸모없는 논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탕진하기보다, 가라지와 지혜롭게 공존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종들이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28-29)

종들의 성급한 반응은 곧 우리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뿌리를 뽑는다는 뜻의 발본색원이란 무서운 말도 거침없이 쓰지만, 그것은 악의 힘을 모르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의 만용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상 악의 뿌리를 뽑고자 시도했던 혁명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뽑고 뽑아도 잡초는 끊임없이 자라납니다. 가라지()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근절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공존하면서 가라지 세력에 압도되지 않고 좋은 밀로 무성하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 숙제입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 들이라고 하겠다”(30

악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의 지혜가 있어야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도움이 있어야 가라지의 세력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이것이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입니다. 부단히 가라지와 싸울 때 영혼이 정화되고 겸손해집니다. 가라지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매일 영적 전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가라지고 밀인지 구별할 수도 없거니와 겉은 밀 같아 보이나 속은 가라지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회개하여 가라지가 밀로 변할 수 있고, 거듭된 죄로 밀이 가라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계속 흐르는 인생인데 어떻게 흑과 백을 나누듯

선과 악, 빛과 어둠을 딱 부러지게 나눌 수 있나

선에 스며 있는 악이요, 어둠에 스며 있는 빛이 아닌가

봄과 겨울 역시 그러하다

입춘 지나봄인 듯하더니 난데없이 몰아치는 꽃샘추위

서서히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시간 지나 오해와 무지 탓이었음을 깨달을 때

해결이 아니라 저절로 해소되는 문제 아닌 문제도 참 많을 거다

그러니 참고 또 기다릴 수밖에

서둘러 딱 부러지게 구분할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시는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그러니 가라지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는 게 바람직합니다. 공존의 지혜와 사랑만이 우리가 살길이며 하느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선인이나 악인에게나 햇빛을 주시고 의인이나 의롭지 않은 이에게도 똑같이 비를 주시는 하느님을 닮으라고 하십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여 하느님께 지혜와 힘을 받아 가라지를 압도하는 튼튼한 밀이 되도록 합시다.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8월 401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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