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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54)_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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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4-30 22:34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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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23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한다. 24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3-26).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3)

삶은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탄생이라는 선물을 받고 사람이 되어 가며, ‘세례라는 선물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갑니다.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도 똑같습니다. 사람은 완성품이 아니라 미완성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분발하여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선물에 따라 사람이 되는 과제는 참으로 어렵고 그 책임은 막중합니다. 사람이 될 수 있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은 주님의 십자가 길뿐입니다. 길이자 생명이자 진리이신 주님을 따르는 길 말고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여 주님의 말씀 가운데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누구든지 사람이 되려면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정체성이 또렷한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뿐 아니라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삶의 문제는 끊임없이 모으고 쌓고 채우려는 집착에서 생겨납니다. 반대로 자기를 비우고 버리며 떠날 때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날마다 평생 지고 가야 하는 것이며,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하나도 없듯 각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형성된 환경, 책임, 외모, 성격, 병고 등 나의 존재 전부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있는 그대로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용감히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거룩한 순교의 삶입니다. 곧 주어진 운명의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끝까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따르며 책임지는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인도자와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니 제 십자가의 짐을 치워 달라고, 가볍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잘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버릴수록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 희망, 사랑의 내적 힘이 샘솟습니다.

 

9월은 순교자성월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제 자리에서 매일 새 사람으로, 평생을 하루처럼 기쁘게 주님을 따르는 것이 바로 순교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주님의 전사와 같습니다. 그들의 삶은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영적 전투의 여정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4)

우선 주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성덕의 잣대는 탁월한 학식, 좋은 성격이나 마음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입니다. 억지로 자신을 버리지는 못하며, 버린다 해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할 때 저절로 자기를 버릴 수 있고, 그 결과가 내적 자유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버리는 것은 무아의 삶이요, 참 나의 실현인 진아의 삶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자기추구(self-seeking)의 삶은 실상 허망한 삶이요, 자기를 파괴하는 삶입니다. 반면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자기를 내주는(self-giving)은 죽은 것 같이 보이지만 진정 참 나를 실현하는 삶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25)

진정 지혜로운 이들은 소유보다 존재를 앞세웁니다. 풍부한 소유보다 충만한 존재의 삶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소유에 묻히고 매여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에 집착하며, 실재가 아닌 환상에 현혹되어 자기 존재를 잊어버리고 환상 속에서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얻은 것은 재물이요 잃은 것은 자기라면 얼마나 허망한 삶이겠는지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성취와 더불어 끝없이 솟아나는 욕심에 두려움과 불안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참 나로 살아갈 때 참 행복을 얻어 기쁘고, 안정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새삼 행복은 선택이라고 깨닫습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26)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그러니 주님이나 주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또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 적극적이며 긍정적입니다.

 

언젠가 수도원에 초등학교 동창생이 방문했는데 그와 나눈 대화를 잊지 못합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그의 자랑을 들어야 했고, 결국 그것은 자식 자랑과 돈 자랑둘로 요약되었습니다. 수도 사제인 저로서는 기대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자랑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게 하느님 자랑이었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제겐 최고의 자랑입니다. 하여 매일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끊임없이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그분을 자랑합니다. ‘하느님이 그대의 자랑이듯이, 그대 하느님의 자랑이어라.’ 묵상할수록 그대로 들어 높여지는 자존감에 하느님을 향해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그러니 자랑하려거든 주님 안에서 자랑하십시오(1코린 1,31 참조).

 

사실 주님을 자랑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더 큰 영적 손실은 없습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할수록 우리 존재는 오그라들어 왜소해지고, 주님께서도 이런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자랑이듯 우리도 주님의 자랑입니다. 미사 때든 기도 때든 말씀을 전할 때든, 언제나 당당히 힘차게 사랑하는 주님을 자랑하는 마음으로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늘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아멘.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9월 402

http://www.with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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