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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57)_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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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이블톡 작성일19-05-20 00:28 조회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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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독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2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2-6).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2)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내렸습니다. 광야는 바로 우리 삶의 자리요 우리 마음입니다. 도시의 광야라는 말도 있듯 광야는 한적하고 황량한 곳만 뜻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하느님과 사탄이 공존하는 삶의 자리, 선악이 공존하는 우리 마음자리가 광야입니다. 굳이 하느님을 찾아 일부러 광야에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어렵고 힘들고 쓸쓸하고 외롭고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련과 고통, 가난과 외로움, 두려움과 불안, 고독과 침묵의 광야 체험을 겪으면서 환상이 걷히고 마음이 정화되어 순수해질 때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웃과의 수평적 소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삶의 광야, 마음의 광야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과 수직적 소통을 해야 비로소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외롭고 쓸쓸할 때,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 눈에 보이는 위로를 찾아 밖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고요히 자기 삶의 광야에 머무르며 하느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요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힘을 얻는 길입니다(이사 30,15 참조). 하여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도 매일 고독과 침묵의 장소와 시간을 적절히 마련하여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관상 수행이 필요합니다. 영적 삶에서 고독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3)

하느님을 체험하면 내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느님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체험하지 못하면 그 지식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사물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세례자 요한의 반응이 참으로 기민합니다. 관리자가 넘치는 시대요, 철학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는 드문 시대라 합니다. 마침내 요한은 주님과 만나 하느님 비전으로 눈이 활짝 열려 지도자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은 즉각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자기 울 안에서 벗어나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죄의 용서에 앞서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 회개는 본래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와 주님 안에서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곧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렇듯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여는 회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회개로 깨끗해진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때가 대림 시기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4)

세례자 요한은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주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내 길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는 말씀이요,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주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실행을 통해 회개의 진정성이 보장됩니다. 주님의 길을 닦을 때 회개가 완성되며 참 기쁨과 참 행복을 얻습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다는 의미에서 믿는 이들은 모두 수도자입니다. 또 대림 시기뿐 아니라 평생 부지런히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묵묵히 주님의 길을 닦으며 살 때 세례자 요한처럼 삶 자체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됩니다. 삶을 통한 증거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는 없습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5)

이는 철저히 회개를 실천하라고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회개는 남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자기를 넘어야 하는 삶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은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과 싸울 것이 아니라 우선 나와 싸워야 합니다. 남한테 지더라도 나한테 이겨야 마지막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니 내적 삶은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을 뜻합니다. 어느 수도승이 마더 데레사에게 제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자, 마더 데레사는 즉시 참으로 좋은 수도승이 되십시오(Be a really good monk)”라고 대답했습니다. 본질을 꿰뚫는 적확한 대답입니다.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회개하고 새로워져 주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는 일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화의 골짜기는 감사와 찬미와 평화로 메우고, 교만과 허영의 산과 언덕은 겸손과 진실로 낮아지게 하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굽은 마음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곧게 만들고, 거친 마음길은 온유한 마음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6)

하느님 말씀을 들으라고 귀가 있으며, 하느님을 보라고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 전례 전반부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 전례, 후반부는 주님의 현존을 보는 성찬 전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불암산을 배경으로 한 수도원 주변의 풍경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진선미를 반영합니다. 한 눈 가득 들어와 가슴 가득 채우는 하느님의 진선미, 밥으로 채워지는 배, 눈으로 채워지는 가슴,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조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무한한 가슴은 밥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가슴은 하느님, 하느님의 진선미, 하느님의 신망애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의 대림 시기, 우리 모두 주님의 길을 닦으며 오시는 그분을 마중 나가는 기쁨으로 가슴 설렙니다. 중국 송나라 때 쓰인 <벽암록>줄탁동시란 말이 나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어미와 새끼가 안팎에서 서로 쪼는 것을 빗댄 불가의 말이자, 바로 우리의 내적 광야 여정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길을 닦으며 주님을 마중 나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도 맞은편에서 길을 닦으며 오십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대림 시기뿐 아니라 매일 주님의 길을 닦는 지금 여기가 당신의 길을 닦으며 오시는 주님을 상봉하고 주님의 구원을 보는 장입니다. 주님의 구원을 볼 때 가슴 가득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마침내 주님의 성탄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완전히 실현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6). 아멘. 

 

 

출처: 월간지 <성서와함께> 2009년 12월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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